이 블로그의 내용에 대한 주의사항입니다.
1. 이 블로그는 법의학에 관련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블로그이며, 그런 이유로 일반인이 쉽게 소화해내지 못할 수도 있는 충격적인 (물론 일반인의 시선으로는) 부분을 다루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의도적이지 않은 이유로 우연히 이 블로그를 방문하신 분들이라면 이에 대해 숙지하시고 가능한한 내용을 읽는 것을 삼가해주시길 바랍니다.

2. 블로그의 내용 자체는 저작권법과 상관없이 활용하실 수 있으나, 참고문헌들이나 참고서적들은 저작권법으로 보호받는 내용이 있을 수 있으니 특히 일부의 사진이나 도표를 전제할때는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3. Medicine is an Ever-Changing Science. 본문에 언급된 모든 내용들은 글이 쓰여졌던 당시 발표된 논문들의 주된 성향을 따르고 있습니다. 많은 내용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해 갈 수 있으며 그래서 필자가 자신있게 주장하는 것이 모두 거짓말이 될 수 있습니다. 거짓말에 대해서 욕하는 것은 좋으나 틀린 내용을 그대로 믿지는 마십시오.
by 산채비 | 2009/01/01 22:18 | No One Lives Forever | 트랙백 | 덧글(6)
카테고리에 대한 간략한 설명입니다.
IT'S FORENSIC !! 은 만화, 드라마와 영화의 내용으로 꾸미는 "아주 간략하고 기본적인 법의학 교과서" 입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Knight's Forensic Pathology, Spitz and Fisher's Medicolegal Investigation of Death, Forensic Pathology(Dimaio and Dimaio), Forensic Pathlogy (Dolinak, Matshes and Law), The Pathology of Trauma등을 기반으로 합니다. (매주 수요일 업데이트 됩니다.)

Cine Forensis는 영화 속에 나오는 법의학적인 이야기를 담는 곳입니다. (매주 월요일 업데이트 됩니다.)

No One Lives Forever는 실생활속에서 법의학적인 사항에 대한 의문과 답변을 담는 곳입니다. 때로는 개인적인 잡담이 들어가기도 하겠지만 말이죠. (한동안 업데이트 예정없습니다.)

Who Are You?는 CSI, Crossing Jordan등의 법의학 드라마에서 나오는 법의학적인 이야기를 담는 곳입니다. (매주 수요일, 토요일 업데이트 됩니다.)

Neverending Story는 소설 혹은 만화 속에 나오는 법의학적인 이야기를 담는 곳입니다. (매주 일요일 업데이트 됩니다.)

Deadmen Said... International Journal of Legal Medicine, Forensic Science International, American Journal of Forensic Medicine and Pathology, Journal of Clinical Forensic Medicine, Journal of Forensic Science 등의 법의학 저널에 실린 증례보고를 중심으로 흥미로운 증례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 곳입니다. (매주 금요일 업데이트 됩니다.)

* 업데이트가 자주 안되는 까닭은 대개 필자가 게으르기 때문이거나 쓸만한 포스트꺼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를 위해서(?) "IT'S FORENSIC !!"을 추가합니다. (2006년 9월 4일)

* "IT'S FORENSIC !!"의 첫부분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편의상 Spitz and Fisher's 의 순서를 따르지만 참고서적은 앞서 언급한 교과서들과 다수의 저널들이 되겠습니다.)
   
  1. 범죄현장
     1-1 혈흔분석
     1-2 인체의 생물학적 증거
     1-3 흔적증거                                                                        (2006년 10월 29일)

* No One Lives Forever에 응급(?)으로 푸코의 진자 번역 관련 부분이 더해졌습니다. 이전 네이버 블로그에서 같은 부분에 있었던 것이긴 하지만, 마이그레이션 과정에서 법의학과 관련되지 않은 부분을 빼놓다보니 업데이트가 전혀 되지 않는 불상사가 있었습니다.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업데이트 될 예정입니다. (2006년 10월 30일)


* 블로그 내용 혹은 법의학 전반에 대한 의문점이 있으시면 제 메일로 연락해주십시오. [ajustsee@hotmail.com] (2006년 12월 1일) -> 주로 쓰는 메일주소가 Gmail로 바뀌었습니다. 참고하십시오. [sanchebee@gmail.com]
by 산채비 | 2008/12/31 23:20 | No One Lives Forever | 트랙백 | 덧글(8)
본즈, 죽은자의 증언(Deja Dead) ... 3
     이 포스트와는 그다지 관계없는 얘기이긴 하지만, 이 소설에 대한 많은 독자들의 평은 '뼈 하나로 사인을 밝혀내는 천재적인 법인류학자의 어쩌고저쩌고'가 많았다. 물론 독자들의 수준에서는 이런 평가가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실제에서는 법인류학자가 '뼈 하나만으로 사인을 밝혀내는' 일은 거의 없으며, 정상적인 경우라면 법인류학자가 사인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 될 수도 있다. 대개 백골화된 시체에서 사인의 실마리가 될 소견이 '뼈에 남는 경우'는 아주 드물며, 설사 어떤 근거가 있더라도 그것이 '실제로 있었을지 모르는 다른 사인'을 배제할 수 있을 만한 것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네 주장에 따르자면 법인류학자가 별 필요없는 사람들인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그건 아닌 것이...... 부검 혹은 법인류학적 검사에서는 '사인' 말고도 알아낼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릴러 독자들에게는 이런 '중요한 일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더 얘기할 필요가 없겠지? 

    하지만, 독자들이 왜 이런 '비교적 적절치 않은' 느낌을 받게 되는 이유는 뭘까. 이번 포스트에서 다룰 내용은 그 이유를 상당히 명확하게 보여줄 것이다. 그건 캐시 라익스가 교과서 수준의 내용을 주저리주저리 적어놓은 것을 독자들이 마치 마법의 주문인 양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냐구? 한번 다시 책으로 돌아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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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법인류학적 감정 (76페이지~)
 
    라망슈가 어느 날 오후 늦게, 분석이 끝났는지 확인하려고 내 사무실에 왔다.
    "두개골(*1. 머리뼈) 골절이 여러 군데 있어요." 내가 설명했다. "복원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답니다."
    "위."
    나는 두개골을 코르크 링에서 꺼냈다 (*2. 코르크 링 위에 올려져 있던 머리뼈를 집어들었다).
    "그녀는 최소한 세 번 구타당했어요. 첫번째가 여기예요."
    나는 작고 얕은 함몰 부위를 가리켰다. 사격 연습장의 표적처럼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일련의 동심원이 펼쳐져 있었다. 
    " 첫번째 타격은 두개골(*1. 머리뼈)이 깨질 정도로 강하진 않았어요 단지 두개 외판(*3 바깥쪽 판)에 함몰골절을 일으켰을 뿐이에요. 다음에 이곳을 후려쳤어요."
    나는 방사상 골절선의 중심점을 가리켰다. 동그라미들에 얽힌 바퀴살 모양의 일련의 선상골절이었다(*4. 일련의 곡선모양 골절이 방사선 형태를 둘러싸고 있었다). 바퀴살모양과 동그라미들이 뒤얽혀 손상 부위가 거미줄같이 되었다.
    골절 조각들을 서로 연결하는 데 긴 시간이 걸렸었다. 조각들의 가장자리를 따라 접착제의 흔적이 보였다.
    라망슈는 귀 기울여 들으며, 공중에 굴이라도 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부지런히 두개골(*1. 머리뼈)과 내 얼굴로 시선을 왕복했다.
    "다음에 내리친 곳이 여기예요."
    또 하나의 방사상 부위에서 방금 라망슈에게 보여준 골절선 쪽으로 뻗어 있는 선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5. 따라갔다). 두 번째 골절선이 첫 번째 골절선에서 멈춰 있는 모양이 마치 시골길의 T자형 교차로 같았다.
    "이게 마지막 타격이에요. 나중에 생긴 골절은 그 이전의 골절 부위에서 멈추거든요. 새로 생긴 골절선이 이전의 골절선을 넘는 일은 없어요. 그래서 여기가 마지막으로 내리친 부위라 할 수 있어요." (주1)
    "위."
    "아마 약간 우측의 후방에서 쳤을 거에요."
    "위."
    라망슈는 늘 이렇게 응수한다. '위'라고 말하는 것은, 흥미가 없기 때문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피에르 라망슈는 단 하나도 놓치는 법이 없다. 그에게 두 번의 설명이 필요했던 적이 아직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쌀쌀맞은(*6. 단답형의) 대답은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도록 만드는 그만의 수단이었다. 법정 진술의 예행연습같다고나 할까.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외력이 가해지면 두개골은(*1. 머리뼈는) 풍선처럼 반응해요. 몇 분의 일초 동안이든 외력을 가한 부위의 뼈는 함몰하여 반대방향으로 팽창해요. 그래서 손상은 구타당한 부위에만 국한되지 않죠." (주2)
    라망슈가 내 이야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았다. 괜찮은 듯했다.
    "두개골(*1. 머리뼈)의 구조때문에,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은 경우 그곳에서 생기는 힘은 특정방향으로 향해요(*7. 특정경로를 통해 전해지죠). 뼈가 어떻게 부러지는지, 어떻게 이지러지는지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어요(*9. 뼈는 어느 정도 예측가능하게 주저앉거나 부러지죠)."
    나는 전두부(*8. 이마)를 가리켰다.
    "예를 들어, 여기에 외력이 가해지면 안와(*9. 눈확)안면(*10. 얼굴)에 손상이 생겨요."
    나는 후두부(*11 뒤통수)를 가리켰다.
    "여기에 타격을 입으면 두개저(*12 머리뼈바닥)에 종골절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요."
    라망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케이스에서는 오른쪽 두정골(*13. 마루뼈)의 후방에 분쇄골절이 두 군데, 함몰골절이 한 군데 있어요. 선상골절 가운데 두개골(*1. 머리뼈) 반대편에서 시작하여 오른쪽 두정골(*13 마루뼈)의 손상 부위로 향하고 있는 것이 몇 군데 있어요. 이건 오른쪽 후방에서 구타당했다는 것을 의미해요."
    "세방이군." 라망슈가 말했다.
    "세방이에요." 나도 확인해주었다.
    "그게 사인이겠지?" 그는 내가 어떻게 대답할지 안다는 듯 말했다.
    "가능성은 있어요. 단정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인을 시사하는 것은?"
    "총상도 자상도 그 밖의 골절 부위도 발견되지 않았어요(*14. 총알도 찔린자국도 다른 골절도 없었어요). 척추뼈에서 이상한 상처를 몇 군데 발견했지만,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절단(*15. 사후분해)으로 인한 상처 아닐까?"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닐꺼에요. 위치가 맞지 않아요."
    두개골을(*1. 머리뼈를)을 코르크 링 속에(*2 위에) 되돌려놓았다.  
    "절단 방법이 매우 깨끗해요. 단순히 내리쳐서 손발을 절단한 건 아니에요. 관절 부분을 매우 솜씨 좋게 절단했어요. 가뉴 사건을 기억하시죠? 발렌시아 사건도?"
    라망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보통 거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지만, 셀로판의 버스럭거리는 소리에 반응하는 개마냥 고개를 왼쪽으로 갸웃했다가 오른쪽으로 갸웃거렸다.
    "가뉴의 시신이 실려온 게, 아마 2년 전이었을 거에요." 나는 보충설명을 했다. "모포에 싸여 포장 테이프에 친친 감겨져 있었어요. 두 다리는 톱으로 잘라 따로 싸놓았구요."
    그 당시 나는 고대 이집트인을 연상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미라를 만들기 전에 내장을 꺼내 보존했다. 내장은 나중에 별도의 용기에 넣어 유체(*15. 유해)와 함께 안치되었다. 가뉴를 살해한 범인은 그의 다리로 그것을 재현했던 것이다.
    "아, 위. 그 사건 기억하지."
    "가뉴의 다리는 톱에 의해 무릎 밑에서 절단되었어요. 발렌시아도 동일해요. 팔다리가 관절의 몇 인치 위 또는 아래에서 절단되었죠."
    발렌시아는 마약거래에 욕심을 냈다. 아이스하키 가방에 넣어져 실려왔다.
    "두 사건 모두 제일 끊어내기 쉬운 부위인 손발이 절달되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에는 범인은 관절을 깨끗하게 절단했어요, 보세요."
    라망슈에게 그림을 보여주었다. 표준 해부도를 사용하여 사체(*16. 시체)가 절단된 부위를 표시해 놓은 것이었다. 하나의 선이 목을 횡단하고 있다. 다른 선들이 어께관절, 고관절(*17. 엉덩관절), 무릎관절을 나누고 있다.
    "머리는 제6경추에서 절단되었어요. 팔은 어깨관절에서, 다리는 관골구(*18. 절구)에서, 아랫다리는 무릎관절에서 절단되었구요."
    나는 왼쪽 견갑골(*19. 어깨뼈)을 가리켰다.
    "하악와를(*20. 관절오목을) 둘러싼 상처 자국이 보이죠?"
    라망슈는 관절면의 주위를 에워싼 평행한 고랑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다리에도 있어요." 견갑골(*19. 어깨뼈)에서 골반으로 옮겼다. "관골구(*18. 절구)를 보세요. 범인은 여기를 겨냥했어요."
    라망슈는 대퇴골(*19. 넙다리뼈) 머리가 들어 있는 깊은 구멍을 관찰했다. 표면에 많은 상처가 나 있었다. 나는 말없이 골반을 받아들고 대퇴골을(*19. 넙다리뼈를) 그에게 건넸다. 대퇴골경(*19. 넙다리뼈목)에도 평행한 상처 자국이 나 있었다.
    그는 그 뼈를 오랫동안 살펴보고 나서 테이블에 놓았다.
    "유일하게 패턴에서 벗어난 곳이 손이에요. 이 부위만 뼈를 내려쳐 절단했어요."
    라망슈에게 요골을(*20. 노뼈를) 보여주었다.
    "이상하군."
    "그래요."
    "어느 게 더 일반적일까? 이번 패턴과 그 밖의 패턴 중에서 말이야."
    "그 밖의 패턴 쪽이죠. 보통 사체(*16. 시체)를 절단하는 건 처분을 쉽게 하기 위해서이고,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 방법을 선택해요. 톱으로 절단하는 거죠. 이번 사건의 범인은 좀 더 시간이 걸리는 방법을 택했어요."
    "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그 질문에 대해 나도 충분히 생각해보았다."
    "모르겠어요"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 코르크 링은 머리뼈를 세워놓는 도넛 모양의 받침대를 말한다. 그래서 당연히 "꺼냈다"라든가 "집어넣었다"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겠다.

>> 사실, 이 부분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은 이전의 포스트에 이미 올린 바 있는 '교과서적인 얘기'들이다. 머리뼈는 두개의 판으로 구성되어 있고 어쩌고 하는 것들이 기억나는가? 아주 오래된 포스트이긴 하지만 여기를 잠시 보고 다시 생각해보기로 할까? 솔직히 저 포스트는 '그저 책의 내용을 번역한 수준'의 질낮은 글일 뿐이다. 그리고 전혀 적절치도 않았다. 하지만, 캐시 라익스는 (저 당시의) 필자보다는 좀 똑똑했나 보다. 그래서 교과서 내용을 그대로 베껴도(번역도 아니고), 사람들은 경탄해 마지 않는다. 신비한 일이다. 어쨌거나 그 내용은 그 쯤하기로 하자.

>> "나중에 생긴 골절은 그 이전의 골절 부위에서 멈추거든요. 새로 생긴 골절선이 이전의 골절선을 넘는 일은 없어요. 그래서 여기가 마지막으로 내리친 부위라 할 수 있어요." 이 언급은 'Puppe의 법칙'이라는 고상한 이름도 있긴 하지만, 초등학생들도 대부분 알고 있을 만한 얘기 중에 하나로, '창문에 돌을 두개 던졌을 때 어떤 돌이 먼저 들어왔을까'라는 식의 퍼즐문제에도 자주 등장하는 얘기다. 물론 이렇게 간단한 얘기만은 아니긴 하지만, 여기서는 그정도 얘기하기로 하고....... 

>> "외력이 가해지면 머리뼈는 풍선처럼 반응해요. 몇 분의 일초 동안이든 외력을 가한 부위의 뼈는 함몰하여 반대방향으로 팽창해요. 그래서 손상은 구타당한 부위에만 국한되지 않죠." 이 언급 역시 교과서적인 얘기인데, 이전 포스트의 '스트럭 훕 아날로지'에서도 비슷한 개념의 그림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식의 설명에는 아래 그림이 더 적절할 듯 하다.


>> "머리뼈의 구조때문에,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은 경우 그곳에서 생기는 힘은 특정경로를 통해 전해지죠. 뼈는 어느 정도 예측가능하게 주저앉거나 부러지죠." ---> 번역이 잘못된 건 그렇다고 치고. 이 부분도 역시 이전 포스트에서 얘기가 나오니 조금 읽어보길 바라고, 어쩌면 이 정도까지가 '일반인 수준에서는 머리뼈 골절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얘기하고 있다고 얘기해도 될 정도일 것이다.

>> 총상도 자상도 그 밖의 골절 부위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vs. 총알도 찔린자국도 다른 골절도 없었어요
     이게 왜 다른 말이 되는가를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우리가 얘기하는 상처 또는 손상(흔히 ~상, ~창 으로 얘기하는 wound 혹은 injury)은 '뼈'의 얘기가 아닌 '물렁조직'의 이야기일 뿐이다. 물론 그런 손상에 골절이 동반되거나 뼈에 미세한 흔적을 남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뼈에 아무 흔적이 없다고 손상이 없다고 얘기하는 건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 될 수 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그런 위험한 혀놀림 없이도 충분히 훌륭한 법인류학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캐시라익스는 알고있는데 번역자는 잘 모르고 있는 듯하다.

>> 이 포스트에서는 해부학 용어는 그만 얘기하기로 하자. 어차피 또 다른 포스트에서 다시 다룰 얘기니까 말이다. 그럼 다음 포스트로 또 넘어가볼까?
by 산채비 | 2008/08/23 15:36 | Neverending Story | 트랙백 | 덧글(0)
Pathology - 정신나간 법의학 스릴러?

    언제나 영화는 말한다. '진정한 영웅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실은 이렇다. '좀 더 많은 피가 필요하다.' 

    어린 시절에 '슈퍼히어로물'에 빠져서 슈퍼맨이니 배트맨이니 하는 것을 빠지지 않고 챙겨본 사람이라면, 나이가 들어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당시 우리가 아무런 비판없이 받아들였던 그런 영웅이 결국은 현실적인 법 테두리안에서 보면 잘 나가봐야 연쇄살인범 정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런 생각 해본 적 없다고? 뭐 그렇더라도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이제부터 좀 생각해보면 되니 말이다.

    사실 슈퍼히어로물에서 악당은 반드시 죽어야 할 존재일 수 밖에 없고, 명색이 '슈퍼'히어로인데 상대할 악당이 달랑 한명만 나온다면 이는 멜로물이나 포르노가 아닌가 의심해야 할 영화가 되어버린다. 아니, 그런 종류의 영화에서조차 단 한명의 상대역만 나온다면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 어쨌든 많은 수의 죽어야 할 존재가 등장하고, 그들을 모두 박멸하는 것이 영웅의 역할인데도 불구하고, 실제로 일(?)을 저지르고 나면 '지구를 지키기 위해 그런 것이니 정당방위일 뿐'이라고 법정에서 아무리 항변해봐야 '끝끝내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죄자'로 낙인찍혀 교수대에 고압전류선으로 목매달린 후 총살을 당할지도 모르겠다(뭐 이정도는 되어야 슈퍼히어로물이 아닐까 싶다). 이런 식의 범죄는 전쟁상황이 아닌 상태에서도 당연히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전쟁 중에 그랬다고 할지라도, 이쯤 되면 전쟁이 끝난 후에 A급 전범으로 즉결처분을 당할 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현실에서 슈퍼히어로가 나오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법질서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슈퍼히어로물이 현실적인 배경을 담게되면 좀 내용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데, 절대 현존할 것 같지 않는 고담시의 시민 배트맨이 현실속의 스파이더맨보다 막나가는 게 그런 배경이 있을 듯 하다. 

    하지만, 대개의 슈퍼히어로물이 냉전시대를 반영한 '영웅: 악당 = 선: 악'의 구도로 독자들 (혹은 영화애호가들)의 호평을 받아왔다면, 현재는 그런 플롯 자체가 아닌 그냥 그 시대에 대한 향수(?)를 겨냥해서 가끔 리메이크 되는 것을 빼고는 이미 한물간 장르가 되어 버렸다. 요즘에도 간간히 나오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몇몇 아동용 영화나 시대를 잘못찾은 괴수물을 빼놓고 나면 어디에도 영웅은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고 말해주고 싶다. 사실 영웅이 사라진 건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만은 아니지만, 뭐 그런 얘기는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닌 거 같고......  어쨌거나, 아동용 영화에서조차 이런 선과 악의 구분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가 흔해진 요즘의 영화들에서는 오히려 슈퍼히어로급(?) 인물을 악에 가깝게 표현하는 경우도 간혹 있을 정도다.

    필자의 '슈퍼히어로 = 연쇄살인마'라는 일견 '그다지 적절치는 않아보일지도 모르는' 등식에 충실한 드라마가 하나 있다. 바로 이 블로그에서도 다룬 바 있는 덱스터(Dexter)다. 우리의 영웅은 자신의 살인본능을 악을 처단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이런 괘씸한 설정에 의외로 무덤덤하게 호응하게 되는 건, '이렇게 대놓고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많은 스릴러물에서 이미 슈퍼히어로물의 플롯을 기괴하게 빌려다 썼기 때문일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드라마를 보다 보면, 정말 덱스터는 전형적인 슈퍼히어로물을 현실에 잘 버무린 수작이 아닐 수 없다는 사실에 대개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단지 '슈퍼히어로물'의 변형이 아니고, 원래부터 스릴러라는 장르 자체가 선악의 구분 자체가 잘 흔들리는 장르이기 때문이라는 반박이 있을 수 있다. 특히 복수, 천벌, 원죄 같은 스릴러의 흔한 공통 주제에서는 주인공이 절대 선이 아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일반적인 스릴러물에서 연쇄살인마는 악의 편일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생각하면 (공포는 저지르는 쪽 보다 당하는 쪽에 더 강할 수 밖에 없다), 왜 이런 설정을 영화에서 차용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이 역시 여러가지 답이 있겠지만...... 필자는 그냥 '그것이 현실적이기 때문'이라고 얼버무리고 싶다.

    사실 스릴러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상당부분에서 현실에 집착하게 되는 건, 장르의 특성과도 연관된다. 현실을 벗어난 공포나 두려움은 짧은 시간에는 상당할 수 있으나, 영화 자체가 길어지거나 비슷한 류의 영화들이 등장하게 되면 개별 영화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지면서 제작자가 원하는 방향의 공포나 두려움이 희석되게 된다. 깊은 산속에 실제로 존재하는지 여부도 알 수 없는 기괴한 고성에서 피를 빠는 흡혈귀가 있다고 말하는 건, 당신이 숙직을 하고 있는 회사 옆의 폐건물에서 연쇄살인마가 있다는 것과 비교해서 그 공포의 수준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영악한 영화광들은 이미 왜 폐건물에 연쇄살인마가 살고 있을까 같은 상당히 논리적인 질문들을 제작자에게 던지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현실에 저런 것이 있다면 스릴러를 볼 이유가 없을테니, '진정코 현실적인 스릴러'는 논픽션이나 제한된 다큐멘터리의 몫으로 넘기기로 하면, 이런 접근방법에 대한 스릴러제작자들의 대답은 두 가지이다. 첫번째가 '논리가 필요없는 혹은 논리가 흔들려도 크게 지장받지 않는 배경의 영화를 만든다'정도 일것이다. 스릴러에서 얼토당토 않은 중세가 등장한다던가 환타지 무비 스타일의 스릴러가 그 예가 될 것이고, 대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두번째가 '논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쉽게 속일 수 있는 거짓 현실'을 등장시킬 것이다. 일견 보기엔, 두 가지가 전혀 다른 것같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 역시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거 같다. 어쨌거나, 이런 실패작들 사이에 영화 '패솔로지(Pathology)'를 두고 싶다. 어떻게 보면 '공포를 위한 얼토당토 않은 환타지'가 될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상당히 그럴 듯해 보이는 거짓'일 수도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비교적 논리적으로 많은 피를 얻어냈다는 측면에서'만'은 성공한 셈이니까.

    쓸데없이 서두가 길긴 했지만 하여간...... 어떤 의미로든 이 '패솔로지'는 그다지 잘 만든 영화는 아니라서, 이 카테고리(Cine Forensis)에서 법의학적인 부분을 비평할 수준의 영화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굳이 이 '재미없는 영화'를 시간을 내서 본 것은 최근에 나온 영화들 중에 몇 안되는 바로 '법의학자'가 주인공인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저 그것뿐이다. 제시카 알바가 나온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녀를 쏙 빼고 나면 남기남 감독 작품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이 영화도 그 부분을 빼면 필자에게 전혀 감흥을 주지 못하는 작품이다. 

    그래서 아주 길게 설명하기는 그렇고....... 그냥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얘기에 대해서만 짧게 FAQ를 달아보고자 한다. 

   Q1. 주인공이 하버드 출신의 천재 부검의라던데,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A1. 사실 설정 자체는 병리과 전공의(1년차 추정)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환타지 소설의 꽃미남 마법사 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는 '하버드 출신의 천재'라는 말 자체가 '환타지 소설의 꽃미남'과 거의 비슷한 뜻으로 쓰인다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표현으로 '사시, 행시, 외시 모두 패스한' 이 있다. 어쨌거나 실제의 병리과 전공의 1년차는 미국이 아니라 과테말라나 소말리아에서도 저렇게 막나갈 수는 없고, 다른 의학 분야와는 조금 다르게, 법의학은 어떠한 형태의 의과대학을 나왔던지 상관없이 학부에서 배운 것만으로는 우수한 능력을 과시하긴 어려운 분야인데, 그건 법의학이 대단한 학문이라서가 아니라, 경험이 우선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물론 환타지 RPG 게임에서처럼 마법의 스크롤을 득템해서 '경험이 +100 되었습니다'가 되었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게다가 의료 환타지에서의 '하버드 출신의 천재'는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나온 해리포터' 수준이 아닌가. 당연히 학교에 들어오자마자 마법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좀 더 현실적으로 하기 위해 '전공의'가 아닌 '교수' 혹은 '팩컬티'가 살인마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전공의들은 대개 30대 초반이고, 실제로 일을 하는 병원스태프는 보통 40대 이상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스릴러 무비의 주 관객층과 괴리가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림 6.1 병리학(pathology) 기초 강의를 듣는 전공의들?  

    그런데, 그렇게 잘난 마법사가 왜 이런 예과 학생수준의 병리학 기초강의를 듣는담....... 참 웃기지도 않는 일이지만, 슈퍼맨도 처음엔 자신의 능력을 모두 발휘한 것도 아니고, 한비광도 처음엔 비룡도를 손에 쥐지도 못하고 경공술 외에 아무 능력도 없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뭐 환타지가 뭐 그런거 아니겠어? 

    Q2. 실제로 법의학자들이 부검 결과를 쉽게 조작할 수 있어?

    A2.  일단 부검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조금 복잡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부검을 요하는 변사에 대해 대학병원의 병리과 전공의들이 작당을 해서 사인을 쉽게 조작할 여지는 거의 없다고 보는 쪽이 나을 것이다. 일단 어떤 시체에 대해서 부검 여부,  어디서 부검을 할 것인지, 누가 부검을 할 것인지 등에 대한 선택권은 그들이 아닌 법의관(M.E.)이나 검시관(coroner)에게 있고, 대개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는 시체'를 대학의 전공의들이 멋대로 난도질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럼 법의관이나 부검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일부 검시관(검시관은 의사가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이전 포스트 참조)은 부검결과를 조작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말하긴 어렵긴 하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 모여서 역적모의를 하지 않는다면 개별적으로 조작이나 은폐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일단 여기까지는 좀 진지한 대답일테고...... 환타지영화로 돌아오면 자기들이 멋대로 시체를 가지고 와서 놀 수 있는 비밀 공간? 왠지 여고괴담의 폐쇄된 미술실 같은 '창조된 공포공간'이라던가 '호그와트 마법학교 도서관에서의 밤'과 같은 느낌일 뿐이다. 부검은 피치못할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밤에 의사들만 모여서 몰래하거나' '모든 사람이 잘 알고 있는 부검실 외의 공간'에서 해야 할 일은 없다. 아니 있어서는 안된다. 기본적으로 법의학이라는 학문이 뭔지를 안다면 이런 대답은 사실 쓸데없는 답일 수 있지만, 뭐 이런 영화에서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뭐 고작 싸구려 환타지 영화인데....... 

   Q3. 실제로 부검실에서 자유롭게 부검을 해?  

        그림 6.2 아무리 그래도, 부검실은 연극무대가 아니란 말이다.

    A3. 부검실에서 일정 정도 이상의 엄숙함을 요구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일반적인 사회통념에 기반한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나라에 따라 부검 전에 죽은 자를 위해 묵념을 하고 시작하는 정도의 극도의 진지함을 보이는 수준일 수도 있고, 부검하는 도중에 시체를 옆에 두고 피자를 먹는 수준일 수도 있다. 수술장에서 종교의식을 하듯 엄숙하게 수술하는 의사도 있고 데스메탈을 틀어놓고 미친 듯 몸을 흔들며 수술을 하는 의사도 있듯(실제로 이런 돌아이는 극히 드물겠지만), 부검에서도 개인차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다만, 사회적인 통념을 벗어나는 행동은 어떻게든 제재를 받게 될 뿐이다. 부검실이 시장통처럼 시끄러운 것도 현실과는 크게 다르다. 물론, 부검 내용에 대한 가벼운 농담을 나누거나 부검과 관계없는 개인적인 얘기를 하면서 부검을 하게 되는 것 정도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이 영화 정도의 '막나가는' 대화 수준은 731 부대의 부검실 혹은 아우슈비츠의 비누공장(실존하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에서나 있을 법하다.

        그림 6.3 시체에 대한 모독? 우리나라에서는 벌금형에 처해지는 범죄이긴 하다. 

    물론 단순히 쓸데없는 말이 많은 것만 문제는 아니다. 부검에서는 적어도 시체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 정도는 지켜줘야 할 것이다. 어차피 이 영화는 그런 것을 생각할 수준의 것은 처음부터 아니었으나 뭐 쓸데없는 소리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Q4. 이 영화에서 나온 교묘한 살해방법이 실제로도 통할까?  

    A4. 사실 이 영화가 철저하게 실패작인 이유 중에 하나가 이런 부분이 엉망인 점이다. 몇몇 영화사이트에서 볼 수 있었던 '그들만이 아는 살인방법'이라는 솔깃한 문구와는 달리, 영화전체를 통틀어 제대로 된 '교묘한 살해방법'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새로운 건 거의 없다. 필자가 '요즘 좀 바쁘지만 않았다면' 각각의 살해방법이 나왔던 영화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그게 왜 그다지 교묘하지 않은가에 대해 얘기하고 싶긴 하지만, 그럴 가치가 없을 거라는 건 이 블로그의 독자라면 아마 충분히 다 알고 있을테니 이쯤하기로 하자. 그냥 재미없는 환타지 무비 하나 봤다고 생각하고....... 그래도 히로인은 꽤 아름답지 않았는가라는 위안을 해본다는 뭐......  

 
        그림 6.4 병리과 전공의가 이런 곳을 출입한다는 거 자체가 범죄행위이다.
by 산채비 | 2008/06/24 03:28 | Cine Forensis | 트랙백 | 덧글(0)
CSI: 6x09 - Dog Eat Dog

    필자는 '다행스럽게도' 개에 물린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 얘기는 '그런데 뭐?' 라던가 '그게 어쨌다는 건데'라는 일반적인 반응을 얻기 위한 그런 말은 아니다. 좀 더 부연하자면,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개들을 무척 좋아했었고, 지금도 방법론적으로는 크게 변화하긴 했지만, '개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인데도, 그리고 상당히 다양한 종류의 개들와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개에 물린 적이 없다는 얘기다. 사실 개에 물리는 건 일상생활에서 드문 일은 아니어서, 미국에서 개에 물리는 사고는 1년에 백만 건이 넘는 것으로 보고 되어 있고(대략적인 피해자 숫자는 백만에서 4백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를 것이 없기 때문에 근 40년을 살면서 개에게 물려보지 않은 것은 상당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렇게 흔하게 보는 개에 물리는 개같은 경우 중에서 심한 손상을 입거나 사망에 이르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아서, 미국에서는 사망예는 1년에 1억명 당 7.2명 정도이고, 이들 중 대부분은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거의 없는 소아(전체의 85%이고 1/3정도가 1세 미만)나 노인이었다[1,2]. 어린애들의 희생이 많은 이유는 아이들이 개와 더 많이 놀며, 개들의 행동을 파악하는데 경험이 부족하고, 개를 놀라게 하거나 자극하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고,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다는 데 있다[3]. 이런 식으로 대충 따져보면, 건강한 성인이 개에 물려 죽을 가능성은 로또 당첨확률보다 좀 더 낮은 듯하지만, CSI: 6x09 - Dog Eat Dog에서는 현실에서는 아주 드물게 보는 성인이 개에 물려 사망한 경우가 나오는데......

        그림 6.9.1 일반적으로, 개에 의한 '개같은 경우'는 이렇게 깨끗한 현장을 남기지는 않는다.

    물론, 기본적으로 집에서 기르는 개라는 동물(Canis familiaris) 자체가 400개 이상의 다양한 종류로 구성 되어있기 때문에, 개에 대한 공격 자체를 하나로 묶어서 얘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런 치명적인 예에 한해서는 대부분 특정종류의 견종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얘기할 수는 있을 듯하다. '적어도 저런 현장은 개에 의한 건 아닌 것같군' 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다시한번 반복해서 말하자면 과학의 세계에서 '결코'라는 말은 없으니, 대략적으로 말해서 일반적인 '살인용' 개에 의해서 저런 현장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SRM이 제거된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vCJD가 생길 가능성과 비슷하다고 해둘까. 

        그림 6.9.2 이 분야(?)의 대표주자인 로트와일러(왼쪽)와 아메리칸 핏불테리어(오른쪽). 뭐 독일세퍼드는 어떻게 생겼는지 모두 잘 알테니 빼기로 하고....... [사진은 출처불명].

     위의 그림처럼, 치명적인 개의 공격의 주인공은 대개 잘 알려진 바대로 핏불테리어(혹은 불테리어 종류 모두), 로트와일러, 독일세퍼드 등이다. 물론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진 '도사견(tosar)'같은 혼합견종이나 도베르만 같은 견종도 한몫을 하지만 말이다[2]. 참고로, 이 에피소드에 나온 골든 리트리버는 사람을 거의 물지 않는 순한 견종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 자료[3]에 따르면, 미국과 캐나다에서 성인이 개의 공격에 의해 사망한 658 예에서 골든 리트리버에 의한 사망은 단 한 건도 보고 되어 있지 않다. 반면 현실세계에서 '개같은 경우'의 주인공인 핏불테리어가 활약한 예는 그 중에 400예가 넘으며,  로트와일러와 함께 묶으면 거의 80%에 이른다. 다른 견종과는 달리, 핏불테리어는 자신보다 덩치가 훨씬 큰 동물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들에 의한 피해자는 소아만큼이나 성인이 많다. 이들은 경고없이 공격을 시작하기도 하는데다가 (일반인이 개들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는) 꼬리를 흔히 짧게 짜르기 때문에 공격 경고를 알아채기도 그다지 쉽지 않다. 

    그럼 왜 이런 실제 '살인사건의 주인공'들을 제끼고, '온순한' 골든 리트리버가 주인공이 되었을 것 같냐고? 간단히 생각해봐도 쉽게 답이 나온다. 아무리 훈련이 잘 되어 있는 경우라도 핏불테리어나 로트와일러같은 맹견이 연약한 여자의 목을 무는 시늉을 한다면 어떤 여배우라도 제 정신이라면 자신의 목을 내놓지는 못할 것이 아닌가. 일단 촬영 자체부터 더미(dummy)나 컴퓨터그래픽을 동원해야 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스토리 상, 핏불테리어나 로트와일러같은 맹견을 집안에서 아무런 보호장비없이 키울 정신나간 사람은 없을 것이고, 에피소드에서 나온대로 손에 고기를 묻혀서 개를 유혹하는 어리석은 짓을 했다가 팔이 잘려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골든 리트리버보다 좀 더 가능성이 있는 시베리안 허스키나 독일 세퍼드같은 견종이 더 낫지 않았겠냐고 말할 수 있지만, 이들은 성인에게는 거의 피해를 끼치지 않는 종류들이다. 어쨌든, 이 문제는 시청자들이 백배 양보해서 제작상의 편이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고 치자. 그리고 언제나 광견병을 비롯한 개의 질병이나 약물들이 '이상한 습성'을 만들 수 있으니 뭐 거기까지만 얘기하기로 하고.......

    일반적으로, 이런 개들은 팔이나 목 같은 작고 둥근 형태를 가진 부위를 주로 문다. 턱의 모양에 따라 그 형태는 다양하지만 개가 문 상처의 특징적인 형태는 한쌍의 송곳니(canine teeth)에 의한 손상이다. 이들은 견종에 따라 4-7cm 정도 떨어져 있고, 주로 깊이가 감소하는 질질 끌린 모양의 평행선상 피부까짐의 형태를 띠게 되고, 아이들에서는 뼈를 뚫는 구멍으로 나타날 수 있다. 피부의 파열이나 피부밑조직의 좌멸을 볼 수도 있고,  목이나 어린아이의 머리뼈 등이 공격에 의해 터질 수도 있다[4]. 여기까지는 '단독범에 한정된 얘기'이고, 소수이지만 '개떼 공격'이라는 실제보다 게임이나 운동경기에서 많이 들었을 용어도 등장할 수 있다. 개들의 습성상 여러가지 상황에서 개떼의 공격이 일어날 수 있고, 이런 경우 손상이 훨씬 복잡하게 될 수 있다. 여기까지도 그저 그들이 단순히 '공격'만 할 때의 얘기이다. '공격'후에 '식사'를 좀 하게 되면 대략 이런 정도의 상당히 기괴하긴 하지만, '익숙한' 사건현장이 나타나게 된다. 

        그림 6.9.3 물론, 이런 식의 극단적인 예도 드물긴 마찬가지다. [Bones 1x15, "Two bodies in the Lab" 중에서]  

    이정도 되면 개의 공격자체보다는 다른 문제가 더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개들에 의한 사후손상같은 복잡한 문제는 나중에 다시 다루기로 하자. 과연 개가 공격한 것일까 다른 원인에 의해서 사망한 시체를 개가 '정리한' 것일까를 따지는 문제야말로 어떤 의미로든 그다지 쉬운문제는 아니다[6].  이 포스트에서는 그건 대충 넘어가기로 하고....... 

    일반적으로 그림 6.9.1 같은 일반적인 범죄현장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까닭은 개들의 공격습성 때문이다. 물론 목부위를 깨물어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 자체는 틀린 것이 아니지만, 몸에 별다른 이상이 없는 성인여자가 개의 공격을 받았을 때 아무런 저항이 없이 얌전히 목을 내주는 일은 없고, 개도 '이정도면 피흘려서 죽겠구나'하고 공격을 중단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기대되는 흔한 손상은 팔이나 위팔에서 보는 특징적인 이빨에 의한 손상과 대략 봐도 그외의 가능성을 생각하기 힘든 심한 목의 손상이 될 것이다. 게다가 개가 럭비라도 배운 후에 낮은 태클을 해서 넘어뜨린 것이 아닌 다음에야, 앞발에 의한 손상이 전혀 없는 것도 보기 어려운 장면이 되겠다. 특히 이 에피소드에서 설정된 대로 개의 '조건반사적인 분노'에 의한 살인의 경우라면, 보통 개가 극도로 화가 났을 때는 강하게 목부위 등을 물면서 고개를 움직여서 여러방면으로 찢긴 상처를 만들곤 한다. 물론 '개가 비교적 상식이 있고 절제가 가능한 고매한 인격을 가진' 아주 극단적인 경우라도 개의 입에 물린 상처가 그림 6.9.4 같이 만들어진다는 건 확실하게 상식밖의 일이다. 게다가 사인을 설명하면서 제시된 아래 그림 6.9.5과 같은 장면 역시 아무리 좋게 봐주더라도 개도 '안아주세요'의 느낌이고, 당하는 여자도 '어이구, 귀여운 것'의 느낌마저 주는 훈훈한 가족드라마에나 나올 수준이다. 물론, 동물배우(?)에게 그 이상의 명연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어쨌거나 저 상황에서 아무런 손상없이 목만 깔끔하게 베어지는 건 '당연히 개 따위의 동물에 의한 손상이겠군'이라는 시청자들의 섵부른 추정을 불허하는 작가님들의 숭고한 뜻으로 생각하기로 하고...... 그리고 해부학을 무시한 괴상망측한 손상이 나타나는 것 역시 작가님들 혹은 연출진들의 아스트랄하고 SF적인 웅대한 세계관에 기반한 것으로 생각하기로 하자.


        그림 6.9.4 도대체 이 손상은 뭐란 말이냐. 개가 메스라도 들었단 말인가?

        그림 6.9.5 주인님, 제 재롱을 보시죠?

    한가지 특기할 사실이라면, 대개의 범죄(?)와 마찬가지로 이들도 '아는 사람을 주로 문다'는 사실이다. 많은 경우, 가족 내에서 기르던 개 혹은 이웃집 개가 범인(?)이 되는 것은 주로 어린이나 노인이 피해자인 것을 감안하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성인이라도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것이 야영중에 발생하는 들개의 집단 공격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성인이 생활하면서 '모르는 개들과의 근접조우'가 일어날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그림 6.9.6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악사에게, 개는 수의사에게?  

    어쨌거나 이런 상식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난관들을 지나서 '범인으로 추정된 개'가 연구소 안에 들어오게 되었고, 지금까지 나왔던 '슈퍼 CSI요원'이 무색하게 아시아 계열의 요원이 개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우선 (골든 리트리버 같은 온순한 개들이 사나워질 수 있는 일반적인 경우인) 광견병(rabbies)은 아니고,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주절주절 거리는데....... 물론, 현실에서는 이런 장면이 나오지 않을 것 같긴 한 것이, 미국에서는 크게 다른지 몰라도 대개의 나라들에서는 일단 이 개는 검사가 들어가기 전에 먼저 사살된 뒤 머리뼈를 통채로 드러낸 후에 나머지 검사를 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에피소드의 내용처럼 사람을 물어 죽인 개를 '개에 대해 전혀 상식이 없는 요원들이 산채로 잡아서 어쩌고......' 이후에 나올 얘기는 드라마에서와 달리 '연쇄살인마 개 등장'일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물론 만약 그랬다면 이후의 반전이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여자가 수의사인지 홍콩에서 온 술집아가씨인지는 잘모르겠지만 ('잘 내주지 않는 요원의 자리'를 쉽게 덜렁내준 것으로 미루어 실제에서는 이 여배우의 아버지가 CBS에 큰 돈을 투자하는 중국계 마피아나 흑사회의 보스 아니면 재벌은 혹시 아닐까도 잠시 생각해봤지만...... 뭐 하여간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자기들끼리 '과학잡지에나 나올만한 얘기로 얼렁뚱땅 시간을 때우기'를 안하고 전문가를 동원했다는 게 다소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 잠시 생각했는데......   


        그림 6.9.7 물론 '개같은 경우'일지라도, 이런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듯한데......

    어라, 이게 무슨 일일까. 자기들이 얼렁뚱땅 해도 되는 일은 수의사에게 맡기고 치아의 대조검사 같은 '전문적인 일'을 쥐뿔도 모르는 요원들이 한다는 건 또 뭘까. 차라리 개들의 DNA검사 같은 거라면 조금 달라질 수 있겠지만, 실제로 이런 손상에 대한 대조검사는 '그냥 그림맞추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자주 설명한 바가 있다. 이건 마치 법의관에게 현장 조사를 시킨 이후에 CSI요원들이 부검을 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이런 부검도 '법적으로 허용만 된다면' 자기들이 직접할 것 같은 그런 막장드라마이긴 하지만 말이다. 

 
참고문헌

    1. 드 무니크 K, 반데 부르데 W. 치명적인 개의 공격의 법의학적 접근: 사례보고 및 문헌고찰. Int J Legal Med 2002;116:295-300.
    2. 츄코스 M, 비야드 RW, 퓌셀 K. 살점이 발라지고 머리가 잘린, 광범위하고, 절단된 머리얼굴 외상- 소아에서의 치명적인 개의 공격의 특이한 형태. Am J Forensic Med Pathol 2007;28:131-6.  
   3. 클리프턴 M, 미국과 캐나다에서 개의 공격에 의한 사망과 사지절단(1982. 9 ~ 2006. 11), 출처미상. 
   4. 동물에 의한 손상 중, '개들' [메이슨 JK, 퍼듀 BN. '외상의 병리학' 제3판, 2000, 아놀드, 274-5].
   5. 크넵시 B, 콘돈 KC. 개떼공격으로 생각되는 심한 개에 물린 손상: 문헌고찰과 7예의 보고. Injury 1995;26:37-41. 
   6. 스테드먼 DW, 온 H. 실내환경의 개에 의한 유해손상. Forensic Sci Int 2007;173:78-82.
by 산채비 | 2008/06/22 03:12 | Who Are You | 트랙백 | 덧글(0)
88 minutes - 정의와 진실 사이
                  그림 5.1 어디서 본 듯하지만, 딱히 어떤 연쇄살인마의 작품이었는지는 떠오르지 않는 기괴한 시체처리(?)

    (필자는 이런 관점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순수한 관객입장에서 본 '88분'이라는 영화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작품 중에 하나다. 물론 알 파치노를 비롯해서 닐 맥도노프, 알리시아 위트, 릴리 소비에스키, 에이미 브랜만 같은 '드라마에서 자주 보는 얼굴들'이 나오는 것도 그렇고,  시놉시스조차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인데다가, 살인마의 범행수법이 왠지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주고, 영화를 보다보면 '아, 저 X이 범인이겠네'라는 예감을 '아주 강하게' 하게 되고 그런 근거 없는 예상이 전혀 틀리지 않는 그런 종류의 영화다.  해외에서의 관객평은 아주 냉혹한 쪽이었다. 그들의 주장을 간략하게 한 줄로 줄이자면 영화관에서 보기엔 돈이 아까운 영화 라고나 할까. 물론 알 파치노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황송하다면 모를까 필자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어쨌든 이미 어느 정도 스포일러가 된 상태이지만, 앞으로는 거의 영화의 내용을 다 얘기할 듯 싶으니, 영화를 안 본 사람들은 여기까지만 읽던가, 아니면 이런 영화 보느라고 시간을 쓰지 말던가....... 뭐 알아서 하도록 하고,

    [굳이 이 친숙한 얼굴들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보자면, 알리시아 위트는 앨리맥빌에서 그랙의 애인이던 호프로 나왔으며, 니벨룽겐의 반지에서 크림힐드 역할로 나왔던 여자다. 두 작품에서는 그렇게 망가지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지금은 뭐...... 릴리 소비에스키는 딥 임팩트에서 엘리야 우드(반지의 제왕의 프로도)의 여자친구 역할, 잔다르크에서 타이틀 롤, 글래스하우스에서 누나 역할을 했다. 이 영화에서 맡은 역할이 영 그래서인지 몰라도 인상이 좀 험해진 거 같은 느낌이다. 에이미 브랜만은 드라마 "Judging Amy"의 히로인으로 최근엔 그레이아나토미의 스핀오프인 프라이빗프랙티스에서 닥터 바이올렛 터너역할로 등장했고(그레이아나토미에서도 잠시 얼굴을 비춘 바 있다), 최근에는 제인오스틴북클럽에서 남편에게 채인 중년주부(!!!)로 나왔던 바 있다.]

                  그림 5.2 과연 실제로 이런 생중계를 하긴 할까? 

    어쨌거나, 여기서 알 파치노는 법정신의학자(Forensic Psychiatrist)인 잭 그램 박사 역을 맡고 있다. 일부 국내 영화사이트에서는 이 자의 직업을 범죄심리학자라고 적고 있는데, 아마 법정신의학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 오역같긴 하다. 미국에서 법정신의학은 정신과 전문의 수료후 1년 이상의 펠로우쉽을 거쳐야 일을 할 수 있는 정신과 세부전공의 하나이다. 물론, 법(forensic)이라는 단어 때문에 법의학과의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역시 이쪽과도 큰 관계가 없는 분야이긴 하다. 이들 중에 실제인물은 아니긴 하지만, 의사로서는 가장 유명해진 '한니발 렉터'가 있는데....... 뭐 이 얘기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고...... 법정에서 법정신의학자의 주요 업무로는  피고의 정신상태가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상태인지를 판단하는 것(CST라고 한다)과 정신과적인 자문, 그리고 범죄를 저지를 당시의 피고의 정신상태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는가를 판단하는 일(유명한 맥노튼 예를 참고하길 바란다)등이 있다. 어쨌거나 잭 그램 박사는 이런 일이 아닌 FBI요원이나 과학수사계 형사들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실제로 FBI 자문 법정신의학자가 자기의 본래 업무 외에 뭘하고 있는지는 모르니, 뭐 그 정도는 애교로 봐주기로 하고......
  
    여기에 흔히 들어가는 편견 하나는, 이런 종류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흔히 이런 계열의 범죄에서 생존한 사람이거나 희생자의 유가족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거의 대부분의 정상적인 사람들은 확률적으로도 이런 범죄에 노출되기 힘들 뿐더러(실제 이런 사건의 희생자가 되는 경우보다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이 더 높다), 심리학적으로도 이런 심한 트라우마를 받은 사람이 그와 관련된 업무를 남들보다 뛰어나게 할 가능성은 더욱 적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거의 없다는 게 맞을 것이다.(게다가 미국이던 우리나라던, 의사되는 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고, 심리적인 문제를 안은 채 정신과 의사가 되기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필자도 때때로 그런 황당한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달리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할 때가 많다. (도대체 뭘 원하시는 거죠? 가 요즘 자주 하는 답이다) 성폭력이나 소아학대 등을 다루고 있는 사람들에게 흔히 따라 다니는 소문들도 거의 비슷하다. 학교 다닐때 성폭력 희생자였거나 혹은 소아학대의 경험이 있어서 그 길에 들어섰다는 얘기는 솔직히 실제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남들 앞에서 하기 어려운 얘기일텐데도 불구하고, 기자들이나 주변사람들이 아무런 정보도 없이 자연스럽게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추측을 하곤 하는데...... 대개 이런 황당한 오해는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편견에 의한 가능성이 높다. 이 영화에서도 '어쩔 수 없이' 잭 그램 박사의 동생은 이런 연쇄살인마의 희생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참 구태의연하긴 하지만 이건 뭐 그렇다고 치자.

                  그림 5.3 세 여자의 배치가 팝아트를 연상케 한다.

    이 영화에서는 많은 여자가 등장한다. 물론 요즘 의료계나 법조계에 많은 여자들이 진출해 있는 건 사실이긴 하지만, 잭 그램 박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출연진이 여성 일색인 것은 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게다가 실제로 여자 연쇄살인마가 드물고, 대개 이런 형태의 연쇄살인범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전부 남자인 것을 감안하면 더 그렇긴 하지만, 뭐 그 자체를 뭐라고 하긴 그렇고...... (사실 이런 구도는 필자가 좋아하는 타입이긴 하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여자 주인공이 없다고 영화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독특한 영화관을 가진 덕에 그다지 거슬릴 것도 없긴 하지만 말이다.) 그것을 제외하면 이 영화는 이런 장르영화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런 영화의 주된 키워드는 연쇄살인, MO(modus operandi), 모방범(copycat)으로, 비슷한 영화로 필자가 본 것만 수십편에 이르는 그다지 신선하지 못한 분야인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카테고리(Cine Forensis)에서 다루고 있냐고? '난 절대 리바이벌은 안해'라고 늘 얘기하면서도 말이다. 

    
                  그림 5.4 하지만, 과학이 진실을 외면해서는 곤란하다. 

    이 포스트에서 얘기할 부분은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다. 잭 그램 박사는 연쇄살인범 존 포스터의 사형선고를 위해 증거조작을 했음을 시인한다. '생각해봐...... 정의, 진실. 어디에서 이들이 교차할까? (Think about...... Justice and Truth, Where's they intersect?)' 사실 이런 의문은 단순히 법정증인으로서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과학자로서의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많은 전문가들이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언제나 모범해답은 명백해서, 한마디로 말하자면 진실만을 얘기하면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전문가'라는 말의 가치가 요즘처럼 헐값이 된 시대가 옛날에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개나 소나 전문가라고 하는 시대를 지나서 근래에 와서는 전문가라는 말이 마치 '사기꾼' 혹은 '정치인' 수준의 얘기가 되어버렸다. 물론 사기꾼도 사기 전문가일테니 뭐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신문이나 방송에 등장하는 전문가는 정치적 혹은 상업적으로 경도된 이상한 사람이거나 혹은 어떤 분야의 전문가인지 확실치 않은 사람들이 주로 등장한다. 특히 의료 분야는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이 전문가입네 하는 분야인지라, 신문, 방송에 누가 나오던 독자 혹은 시청자들은 그냥 전문가려니 하는 경향도 있어서, 정말 엉뚱한 사람이 전문가로 소개되는 일도 흔하다. 하지만, 의사들끼리는 '왜 쥐뿔도 모르는 간호사가 저기 나와서 의사욕을 하고 있는거지?'라던가 '의사면허따고 나서 학술활동 한번도 안하고 동네의원에서 감기환자만 보던 일반의가 어떤 근거로 거의 대다수의 의사들이 의심하지 않고 믿고 있는 의학의 최신지론이 거짓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거지'라는 식의 얘기를 자주 한다. 물론 그들도 '일반인'이 아닌 '전문가'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런 식의 전문가라면 시장에서 물건파는 아줌마도 판매전문가이니까 토론프로에서 경제학 전문가로 나와서 서울 유수 대학의 경제학과 대학교수들과 토론을 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그래서인지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말을 일반인들이 안믿기 시작한게 요즘이다. 

    물론 이런 것은 신문과 방송에서 저질 전문가들이 판치고 있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전문가들이 정말 '진실'을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아무리 '극초특급 캡 저질 전문가'라고 해도, 일반인 수준정도에서 조차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 자체를 모르지 않을텐데도 태연자약하게 개소리를 해대는 전문가의 숫자가 늘어가는 것을 보면 그들이 왜 '진실'을 말하지 않는가에 대해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확실한 답이라고 얘기하기는 어렵긴 하지만,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는 바로 그 '진실'이 아닌 것들에 더한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몇몇 전문가들은 지속적으로 연구비를 받기 위해, 혹은 자신의 매명을 위해서 연구결과 자체 혹은 그 해석을 왜곡하고 있고, 흔히 폴리페서로 불리는 학계의 정계진출 후보자들은 자신의 의견이 특정 정당 혹은 국가기관의 정책방향에 가깝도록 쓰레기 같은 논문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없이 학술논문에 싣고 있고, 그 학술논문의 편집자들(많은 폴리페서로 구성되었을지도 모르는)도 별다른 비판없이 글을 실어주고 있다. 동료들이나 후학들의 진실을 담고 있는 연구결과를 단지 자신이 원하는 정치적 혹은 사회적 입지를 위해 별다른 반론의 이유 없이 격렬하게 비난하기도 한다. 때로는 왜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이유로도 거짓말을 해댄다. 조금 깊게 들어가면 이건 실제로 그들의 존재이유가 도대체 뭔가 궁금해지는 전문가가 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실 이런 부분은 복잡한 철학에 대한 문제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인 철학에 잣대를 들이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전문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으며, 일반인들이 '저 새끼는 한나라당쪽이야? 아니면 통합민주당 쪽이야?'라던가, '도대체 뭘 쳐먹였는데 저런 개소리를 짖어대는거지?'라는 평가를 하게 된다면, 이미 전문가의 생명은 그게 끝인 거다. 불행히도 이쯤 되면 진실을 말하는 전문가조차 저런 쓰레기 전문가들이 만들어 놓은 아수라장 속에서 헤어날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그리고 더 개판이 되다보면, 그 자체가 왜곡되어 사람들의 정치적인 입맛에 맞는 거짓 의견을 내놓는 자가 진정한 전문가로 추앙을 받는다. '저 자가 살인자라는 사실을 믿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아주 달콤한 유혹에 빠지면, 곧이어 'OO당이 정권을 잡아야 우리나라가 행복해진다는 것을 믿지?' 혹은 '이 연구가 학계인정을 받아서 수많은 연구비가 여기 투자되어야 이 치료법이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라는 식의 남들을 쉽게 설득하기 어려운 유혹에도 쉽게 빠지게 할 수 있다. 거짓말은 한번이 어렵지 횟수를 거듭하다보면 그 거짓말 자체에 자신이 쉽게 속는 일이 벌어진다. (사이비 의료인들 중에 그 시술을 자신의 몸과 자기 자식들의 몸에도 했던 자들이 있었다. 다행히도(?) 아무도 죽지는 않았으나, 어쨌거나 '남들을 완전히 속이기 위해서는 자신을 먼저 속여야 한다'는 역설을 증명하는 에피소드중에 하나다.)

    최근에 인간광우병에 관련하여 신문, 방송 및 다양한 인터넷 매체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의외로 '인정받을 만한' 전문가의 의견은 별로 실리지 않는다. 단지 그냥 학술논문 몇 개 뒤져본 뜨내기 의사들의 '믿거나 말거나'식의 익명성 글들이 올라온다. 솔직히 그들이 의사인지도 잘 모르겠다만, 어쨌거나 전문가들이 '별 얘기 못하는' 이유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다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실존하지 않는 (혹은 존재하나 잘 엄폐되었을지도 모르는) 이 질환에 대한 전문가도 극소수(이 숫자가 정확히 몇명인지는 모르겠지만, 숫자를 좀, 예컨데 수십명 이상으로 늘리려고 한다면 필자같은 무지랭이도 포함될지도 모를 지경으로 이 곳은 무주공산이다. 이해되지 않는다고? 물론 신문방송에 나가서 개소리할 전문가를 전문가라고 한다면 수만명도 될 수 있을 거다)이고, 나름 질환자체에 대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 질환은 어떤 주장을 받아들여야 할지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분야이기 때문에 당연히 제대로 된 답이 나올리 만무하다. 그렇다보니, 뭔가 말을 해야 하는 사람들 중에는 정말 정치적이나 다른 목적을 가지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이익단체에서 나온 얘기들은 당연히 경도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문가들의 입장은 입을 다물거나, 그보다 더 바람직하게는 '모른다'라고 얘기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뭔가 알고 있다면 아는 것만 얘기하면 된다. 사람들은 왜 전문가이면서 아무 얘기를 하지 않느냐고 욕을 할 수도 있다. 그런 비난에 전문가들은 초연해야 할 것이다. 전혀 모르는데 그것에 대해 얘기하는 순간, 자신의 얘기는 진실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과학자는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가치던 그것을 넘어설 수 없다. 만약 그 우선 순위가 바뀌게 된다면, 일단 과학자로서의 삶 자체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야구선수가 더 이상 공을 던질 수 없을 때 선수일 수 없듯, 진실을 외면하는 과학자는 더 이상 과학자일 수 없기 때문이다.  
by 산채비 | 2008/05/22 00:40 | Cine Forensis | 트랙백 | 덧글(1)
거참...... GHB제조법이 그렇게 궁금한가요?

    요즘 언론이나 외국 범죄 드라마에 자주 노출된 탓인지, 많은 비행 청소년(정말, 화학이라고는 고등학교 때 원소기호 외우다가 볼짱 다본 녀석들이 대부분이지만)들에게 GHB(gamma-Hydrobutyric acid)는 꿈의 약처럼 생각되나 보다. 그런 신문기사만 나오면 이곳 블로그는 평소보다 수십배 많은 독자들이 붐비는 것 같다.  

    물론 필자의 블로그를 아무리 뒤져봐도 GHB에 대한 포스트는 (당연히) 없다. 대개는 다른 포스트에 언급되는 몇개의 단어들의 조합이 그들의 취향(?)에 맞는 검색어가 되는 듯 하다. (예를 들면, 'GHB+ 제조법'이라던가 'GHB+ 데이트+ 강간'같은 것이 말이다) 뭐 그냥 거기까지만 하면 별 문제 없으련만, 혹시 다른 내용이 있을까봐 다른 포스트들을 뒤지다가 기겁할만한 (원래 비행청소년들은 겁이 많다. 그래서 비행을 하는 거 같기도 하지만) 사진을 보고 유치한 욕설을 남기고 간다. 아마 다음에 또 GHB관련 뉴스가 방송에 나오면 이런 일은 또 반복될 듯하다. 뭐 당연한 얘기지만, 어쩔 수 없다. 정말 GHB제조법이 알고 싶다면 공부를 좀 더 하던지(물론 그런 것을 할 줄 안다면 이런 개인적인 블로그에 쓸데없는 욕이나 올리고 있지는 않겠지. 디씨나 네이버도 아닌데 말야.)아니면 검색방법을 바꾸던지 말이다. 필자같은 '바른생활 사나이'가 비행청소년들을 위해서 그런 거 가르쳐줄리 만무하잖아. 뭐? 청소년이 아니라 성인인데 좀 안되겠냐고? 그럼, 필자에게 이메일을 보내길 바란다. 반드시 연락처와 실제 거주하는 주소를 명기해서 말이다. 뭘 해줄꺼냐고? 당장 경찰청에 신고하는 수고는 해줄 수 있다...... 당연히 농담이고, 정말 메일을 보내는 바보는 없겠지? (그런데 있다. 굽신굽신을 덧붙여 말이다. 참...... 인터넷 대중화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덧붙여, 필자는  그런 쓸데없는 것에 대해 아는 바도 없다.  

    그래도 한가지 믿고 싶은 게 있다면, 그런 검색을 하는 이유가 단지 호기심이나 자기 주변의 여성들이 이런 약물에 의해 생길 수 있는 나쁜 범죄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차원일 것이라는 거다. (행여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GHB제조법'? 혹시 우연히 다른 쪽의 약물을 만들다가 혹시 GHB를 만들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때문에 절대 몰라야 겠다는 생각에 검색했다고 그냥 믿자. 어차피 이런 것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만들어보겠다고 생각하는 수준이라면 실제 제조법을 가르쳐줘도 만들 수 없는 게 당연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뭔가 잘못 알고 있는 비행청소년들을 위해서 한가지 말을 덧붙이자면, 남에게 무슨 약을 먹이는 행위는 단순히 알코올만으로도 상당히 위험한 일이라는 사실이다. 한번 호기심이 길고 긴 인생을 조지기 딱 좋으니 이에 대해서는 그냥 잊어라. 물론 인터넷 검색만으로 얻은 지식으로도 폭탄 쯤은 쉽게 만들 수 있고 사제총기도 만들 수 있긴 하지만, 그런 거 만들다가 젊은 나이에 저 세상 가는 인생이 허다하다는 사실도 알아두도록 하고 말이다.    

    하지만......

    GHB제조법을 알 필요가 없다고 해서 GHB 자체가 뭔지 몰라야 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 블로그의 독자의 대다수(물론 요즘 GHB때문에 대다수의 독자라고 얘기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버리긴 했지만)인 CSI 팬들에게 GHB는 그냥 '데이트 강간약'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잘못 인식되고 있는 바, 좀 더 깊은 진실(?)을 얘기해야 할 듯하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약물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걸 멀쩡한 동네 처자 술잔에 쳐넣는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문제 아니겠는가. 좋은 약/ 나쁜 약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덧붙여,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으나, 이는 상당히 철학적인 문제이니 거기까지만 해두고......)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악용될 소지가 있는 'GHB 제조법'을 제외한 GHB에 대한 얘기를 해보기로 하자. 물론, 독자들의 기본 수준을 감안해서 위키피디어 정도의 가벼운 얘기를 시작해보자면...... 

    GHB는 앞서 얘기했던 바대로, Gamma-Hydroxybutyric acid (IUPAC 명으로는 4-hydroxybutanoic acid,  화학식으로는 C4H8O3)의 약칭이며, 일종의 신경보호(neuroprotective) 치료제로 사용되며, 중추신경계나 술, 고기나 과일등의 여러가지 음식물에서 소량 존재하는, 자연상태에서 생성되는 물질이다. 의학적으로는 전신마취제나 불면증, 우울증, 기면증이나 알코올중독 등의 치료제, 그리고 운동선수들의 능력향상을 위해 쓰여 왔지만, 이보다는 유명한 '데이트 강간약'같은 불법적인 용도로 주로 쓰이는 약이고, 뭐 이런 저런 이유로 많은 나라에서 이 약품의 생산, 유통, 판매 및 사용이 불법으로 되어 있다.

    GHB는 그렇게 오래된 약물은 아니다. 물론 GHB의 제조방법이 아주 단순하고 자연상태에서도 생성되는 약물이기 때문에 최초의 합성이나 사용이 언제였는지 알기는 어려운데다, 실제로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지만....... 적어도 인체에 사용하는 약물로서 사용된 것은 고작 1960년대일 뿐이다. 초기에는 치료농도와 독성농도 간의 간격이 좁고 알코올이나 다른 중추신경계 억제제와 같이 사용하면 위험하다는 것 외엔 부작용이 적고, 작용시간이 짧다는 점에서 다양한 사용이 있었다.  그러나 약물의 특성상 약물남용의 문제 등으로 다른 신약들에 자리를 내주고, 현재는 아주 일부에서만 제한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GHB는 감마부티로락톤(gamma butyrolactone)과 1,4 부타니디올(1,4 butanediol)등의 대사체가 있는데, 이들을 섭취하면 몸에서 빠르게 GHB로 변화하게 되므로, 이들 역시 GHB와 같이 취급되게 된다[아래그림 참조].

 

    물론, 앞에서 얘기한 제한적인 의학적 용도를 제외한다면, 그 외에 어떤 용도로든 인체에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며, 나라마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국내에서 이것을 만들어 파는 행위를 하면 어떻게 인생을 조지는지에 대해서는 (GHB 매니아인)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인터넷 검색에서 찾아보길 바라고, 덧붙여 이런 짓을 하다가 걸리면 '그냥 호기심에서 어쩌구'하는 얘기는 초등학교 저학년 이후에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한번 더 강조한다. 어젰든 이제부터 하는 얘기는 그 처벌수위는 다르겠지만, 모두 불법이라는 사실이다. 

    신통하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 GHB의 용도(사실, 데이트 강간약 외엔 관심도 없긴 하겠다만) 중에 하나가 흔히 얘기하는 파티약물(party drug)로서의 사용이다. GHB는 '액체 엑스터시' 나 '리퀴드 엑스'같은 (우리나라의 '물뽕'과 같은 어감이다) 이름으로 불리며, 적정량을 복용하면 다행감(euphoria), 행동이나 음악적 쾌감증대, 성욕 증가, 사회성 증대, 중독 등을 일으킨다. 좀 더 복용하게 되면, 오심, 어지러움, 졸림, 초조, 시력장애, 호흡저하, 기억상실, 그리고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 GHB의 효과는 1.5에서 3시간 지속되고, 많은 양을 복용하거나 술에 타먹었을 때는 더 길어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파티약물로 사용할때의 용량은 500mg~ 3000mg으로 1g/mL의 농도에서는 약 0.5~3mL정도에 해당되는 양이다. 이런 용도로 사용될 때에는 흔히 나트륨이나 칼륨염의 형태로 짠맛을 내는 미세한 백색입자로, 클럽이나 바 등에서 1회분에 5-10 달러 정도에 판매된다(그렇다고 미국가서 사와야지 뭐 이런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마도 그거 소지한 채 공항을 빠져나올 궁리를 하느니 차라리 화학공부를 좀 더 하는 게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다). 물론 합법적인 거래는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다른 클럽약물과 비슷하게, 이런 약들은 많은 부분이 밀실제조된 것으로, 특히 독성농도가 치료농도와 거의 차이가 없는 "융통성없는 약물"의 하나인 GHB의 경우 많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데, 특히 일단 이런 염을 물에 타놓으면 어느정도 양인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어쨌거나) 일반적인 GHB는 모두가 알고 있듯 무색무취의 액체이다. 

    '데이트 강간약'으로서 GHB의 활용(?)은 상당히 유명해져버린 얘기로, 무색무취이며 단기적인 기억상실을 유발할 수도 있고 24시간이 지나면 소변에서도 검출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범죄에 많이 사용된다는 뭐 그런 '오래된 뉴스'는 들어 알고 있을 것이고, 그래서 집요하게 이 약의 제조법 혹은 이 약 자체를 구해보려고 하는 사람이 꽤 된다는 것도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자체가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그런 일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앞서 했던 충고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당신이 설사 꽤 유능한 약사라고 할지라도 알코올을 상당량 섭취한 20대 여성(그것도 정확히 얼마나 먹었는지 확실히 모르는 상태에서)에게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을 한도에서 적절한 작용을 할 GHB의 양을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뭐 대개 안죽지 않겠냐고? 부탁이다. 제발 이런 얘기는 그냥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걸로 만족하길 바란다. 

   "DON'T TRY THIS AT HOME." 

    그리고, 덧붙여 말하자면, 우리나라도 이런 클럽문화의 어두운 측면을 많이 받아들인 탓에 "좀 놀다보면" 이런 약물에 피해를 입지 말라는 보장이 없는 형편이다. 물론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클럽따위는 절대 가지 않았고 집, 학교, 도서관 밖에 뭐가 있는지도 몰라'라는 얘기를 하는 필자 같은 바른생활 사나이라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 말 중에서 맞는 얘기는 '사나이' 밖에 없긴 하지만) 어쨌거나, 당신이 20대 여성이라면, 설사 호기심에 어쩔 수 없이 클럽에 가더라도 절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과 술을 먹는 비정상적인 삶을 살지는 말아야 할 때가 점차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때로 사건들을 보다보면 이미 와 있는 지역도 있는 듯 하다.   

    때로 GHB가 바디빌더들에게 애용되기도 한다. 이는 GHB에 의해 성장호르몬생성이 증가되기 때문이긴 한데, 뭐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라면 그것보다 덜 위험한(물론 안전하다고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약물이 흔한 세상인데....... 물론 막장인생들에게는 어느 쪽이 더 구하기 쉬우냐의 문제가 되긴 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안에서는 '집에서도 만드는 GHB'보다 그런 약물을 구하기 더 쉬운 듯하니, 뭐 이거 보긴 힘들 듯 하고.......

    덧붙여, 앞에서도 얘기했듯 미량이나마 이것들이 다양한 형태로 자연적으로'도' 만들어질 수 있고, 시체내에서 부패과정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 어쨌든, 이건 그다지 관심 둘 필요는 없을 듯하지만, 이런 이유로 소변에서 GHB가 발견된다는 건 상당히 여러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만 알아두자.

    대략 이정도만 얘기하고 또 한번 겁을 주자면, 적은 량의 GHB는 상당히 안전한 것처럼 알려져 있는데, 이건 '안전의 개념'의 문제일 뿐으로, 마치 '공부하다 죽은 사람은 없다'라는 얘기처럼 그다지 근거없는 얘기인 것이다(아주 대충 추산하더라도 공부하다 죽는 사람은 상당 수 있다. 물론 공부가 죽인 건 아니라 할지라도 말이다). 얼마나 위험한 건지는 각자 곰곰히 생각해보고, 참고로 몇마디만 덧붙이자면, 순수하게 정제된 GHB조차도 술에 타면 색다른(?) 반응을 일으킬 수 있고, 특히 '아무렇게나 만든' GHB나 그 유도체들이 어떻게 작용할지는 신만이 알 것이다. (필자는 '아무도 모른다'라는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물론 비슷한 얘기이겠지만 말이다.)

   거듭 얘기하지만, 인생의 모험 혹은 생명을 건 도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인생'만 걸어야 한다일 것이다.  


    참고문헌

    1. 위키피디어, "감마-하이드록시부틸레이트"(http://en.wikipedia.org/wiki/Gamma-Hydroxybutyric_acid)
    2. GHB, [스피츠 WU. "죽음의 의료법적인 연구" 제4판, 2007, 토마스, p. 1214].
    3. 감마-하이드록시부틸레이트, [돌리넥, 매쉬스, 류, 법의병리학, 2005, 엘서비어, pp. 492-3].

by 산채비 | 2008/01/14 23:07 | No One Lives Forever | 트랙백 | 덧글(0)
CSI:LV 3x07 - Fight Night

        그림 3.7.1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권투는 주먹과 머리의 대결일 뿐이다. [Black Dahlia (2006) 중에서] 
 
    1) 변명을 하나 하고 시작하자. 사실 여기서 다룰 '권투손상(boxing injury)'에 대한 얘기는 사실 거의 다 써놓고 그냥 날려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필자가 수많은 실제사건들을 무시하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어렵게 법의학적 소재를 찾아 다루는 이유 중에 하나는 필자가 관계된 사건이 아닌 그냥 일반적인 사건을 객관적으로 얘기하고 싶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실존하는 사건을 다루어서 누군가의 가슴을 아프게 할 주제들을 인터넷 상에 더하고(add)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필자가 글을 다 쓰고 나서 올리려고 하는 그 시점에 모 권투선수가 경기중에 사망했던 일이 있었고, 왠지 그런 사건을 떠올릴만한 글을 그때 올리긴 그래서 그냥 언제 생각 날때쯤 한번 다시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필자가 그런 식의 '나중에 언제 해야지'같은 생각을 30초 이상 기억할 정도의 고수준의 두뇌를 가진 사람은 아니라서 그냥 방치해 놓고 있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조금 오래된 얘기일 수 밖에 없다. (사실 이런 포스트가 수십 개가 넘는다는 사실은 며느리도 모르는 일이다.) 하여간 왜 이런 오래된 드라마의 오래된 주제를 다루냐고 묻는다면, 필자의 저열한 기억력을 욕하시길.......

    2) 권투는 보기보다 상당히 위험한 스포츠 중에 하나이다. 그냥 손만 쓰는 권투보다는 K-1 이나 다른 이종격투기처럼 사지를 다 쓰는 종목이나 혹은 WWE같이 이따금 흉기도 사용하는 경기가 훨씬 더 위험하지 않겠냐고 묻는다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잠시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보다 권투는 위험한 경기인 건 확실하다. 경기중에 목숨을 잃는 경우만 따져보더라도 권투보다 위험한 스포츠는 없을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최근의 국내 통계에서 한정하자면 가장 많은 사람의 목숨을 가져간 스포츠는 의외로 e-스포츠가 아닐까 싶다. e-스포츠가 왜 사람을 죽이냐고? 대개는 잠안자고 밥안먹고 온라인게임에 장기간 빠져들다보면 폐색전 같은 질환으로 절명하는 예가 이따금 있다. 물론 그정도 되면 그게 스포츠냐 라고 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투는 아직까지 여러나라에서 인기스포츠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고(물론, '대한민국같은 선진국가'에서는 이미 이의 위험함을 오래전부터 알고서 국민들이 스스로 거의 싹을 잘라내 버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최근엔 여자권투선수들의 숫자가 늘고 있으며, 아마추어 복싱 동호인의 숫자도 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왜 권투가 이종격투기보다 위험한 것일까? 간단한 답변을 하자면, 권투 자체가 '주먹과 머리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먹으로 머리부분에 한정해서 가격하는 게 아니긴 하지만, 결국 가격에 의해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기전은 그렇게 단순화할 수 있다. 뭐, 가슴이나 배를 심하게 맞고 다운당할 수도 있겠지만, 글러브를 포함한 보호장구 및 권투기술의 발달로 그런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현대 권투에서 가슴과 배는 K-1따위에서 로우킥처럼 그저 머리를 가격하기 위한 중간단계일 뿐이다. 그리고 가슴과 배에 불의의 강타를 당하고 쓰러지는 비교적 드문 경우에라도, 그 기전을 생각해보면 불행하게도 그 역시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치명적인 손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또 나중에 다루도록 하자). 게다가 다른 격투기보다 장시간 풋워크를 하면서 좁은 링을 돌아다니다가 지쳐서 그런 가격에 더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도 문제다. 그런 이유에서 권투를 국가적으로 못하게 하는 나라들도 있다. 뭐 어쨌거나......
 
        그림 3.7.2 승자와 패자, 그리고......

    CSI 3x07 Fight Night 에서는 권투경기중에 사망한 복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얼핏보면, 이 죽음은 왠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에피소드 내에서도 언급한 고 김득구 선수를 비롯해서, 권투경기의 태동기부터 많은 선수들이 링 위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선수들의 이름은 그 중에서 유명한 선수였거나 타이틀이 걸려 있는 경우일 뿐, 일반인을 포함하여 권투를 하다 사망한 경우는 그다지 특별한 죽음은 아니다. 물론 이 에피소드처럼 정말 '링 위'에서 죽은 경우는 거의 없는데, 그 이유는 뒤에 설명하기로 하고...... 어쨌거나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죽음이 드라마꺼리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특별한 점'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인데, 시즌 3까지(물론 필자는 그보다 더 뒤까지 개판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의 작가들은 그 정도로  생각이 깊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생각은 깊은데 방향이 틀렸을 수도 있고 뭐.......

         그림 3.7.3 외상성 거미막밑 출혈에 대한 다소 부적절한 설명.

    이 불쌍한 패자(?)의 사인은 외상성 거미막밑 출혈(traumatic subarachnoid hemorrhage)이었다. 물론 법의학에 상당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조금은 낯선' 용어가 익숙할 수도 있겠지만, 대개의 사람들에게는 익숙치 않은 사인일 것이다. 이 설명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뇌척수막의 기본구조부터 머리와 목의 혈관구조 및 머리에 가해지는 외력의 방향과 성질 등에 대한 여러가지 사진과 복잡한 그림을 덕지덕지 붙인 긴 해설이 필요하겠지만, 드라마 하나 보자고 그렇게까지 공부를 할 필요는 없을테니 아주 간단하게만 얘기해보기로 하자. 

    사회생활하면서 한 두번 쯤 직/간접적으로  '사람 잘못 건드렸다가 인생조지는 경우'를 경험하거나 적어도 이에 대해서 들어보기는 했을 것이다. (사회생활 한적 없다고? 뭐 그럼 앞으로 하도록 하고......) 물론 이런 경우 사망에 이르게 되는 원인은 상당히 다양하긴 하지만, 이 외상성 거미막밑 출혈, 그것도 '외상에 의한 바닥거미막밑출혈(Traumatic basal subarachnoid hemorrhage)'에 한해서 말하자면 '말 안듣는 후배녀석 술김에 정신차리라고 뺨을 한대 때렸는데 그 이후 너무도 조용하게 주저앉아 있길래 철이 들었나 싶었더니 몸이 굳어 있었다'라던가, '학교 운동장 그네에 앉아 있는 여자친구를 놀라게 하려고 뒤에서 다가가서 살짝 안았는데, 여자가 놀래서 앞으로 뛰어가다가 철봉에 턱 오른쪽이 부딪치면서 그자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죽었(는데 알고 보니 여자친구가 아니라 비슷하게 생긴 여자였다는..... ^^;;;)다.'라던가 '만우절때 교실 앞문에다 고무줄과 분필을 잔뜩 먹는 칠판지우개로 부비트랩을 만들어 놓고 성질더러운 수학선생을 기다리다가, 우연찮게 반을 지나던 담임선생이 '이것들이 무슨 장난하는 건 아니겠지'라며 반에 들어왔다가 얼굴 가득 분필가루를 묻힌 상태로 순직하는 사태'라던가 하는,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는 믿기 어려운 어처구니없는 죽음에 대한 얘기들 말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이렇게 심하게 어처구니 없지는 않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예상치 못한 머리와 목의 가쪽에 대한 가격에 의해 목부분이 돌아가면서 급작스럽게 죽은 경우'이다. 그리고 그 충격 자체가 사망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수준일 때가 많다. 

    그렇다면 왜 비교적 약한 충격에 의해 급사하는 것일까. 그 얘기를 하기에 앞서 우선 거미막밑출혈이 뭔지에 대해서 좀 얘기를 해보자. 머리를 열어보면(약간 무섭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뭐 그게 부검이니까), 머리덮개와 머리뼈를 제거하고, 바로 나오는 막이 경질막(예전에 경막이라고 하던, dura mater)으로 이름 그대로 아주 단단한 막이다. 이를 제거하면 흔히 우리가 각종 영상매체에서 보는 형태의 뇌가 드러나게 되는데, 이 상태에서 뇌는 두 개의 얇은 막으로 싸여 있는 상태이고, 그 중 바깥막을 거미막(arachnoid mater)라고 하고, 안쪽의 아주 얇은 막을 연질막(pia mater)라고 한다. 이 거미막과 연질막 사이에 출혈이 생기는 것을 거미막밑출혈(subarachnoid hemorrhage)이라고 하는데, 이 사이 공간(거미막밑공간)은 정상적으로는 아주 좁은 공간이어서 많은 양의 혈액이 누출될 수도 없고, 이 곳에 적은 양의 혈액이 채워지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쉽게 배출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거미막밑출혈보다는 거미막밑출혈을 일으킨 상황(뇌멍이라던가 동반된 다른 뇌척수막출혈)이 사망에 더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이유로 거미막밑출혈이 언제나 죽음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며, 국소적인 거미막밑출혈은 가벼운 머리외상에서도 흔히 발생하게 되며, 심지어 당신의 머리에도 상당한 국소적인 거미막밑출혈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림 3.7.4 뇌척수막의 해부학 [그레이의 해부학 중에서]

    하지만 바닥거미막밑출혈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뇌의 바닥부위의 거미막밑에는 뇌줄기 등 중요기관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 곳에 생긴 거미막밑출혈은 이런 '주요부위'을 압박해서 급속하게 사망에 이르게 한다. 그래서 바닥거미막밑출혈은 일반적인 거미막밑출혈과는 다르게 취급되게 되는데, 바닥거미막밑출혈의 원인은 많은 부분에서 머리동맥의 정맥류 파열에 의한 것이지만, 외력에 의한 바닥거미막밑출혈도 드물지 않게 발생하게 된다. 좀 어렵게 돌아왔지만, 이 권투선수의 죽음은 이런 외력에 의한 바닥거미막밑출혈에 의한 것이다. 

    외상성 바닥 거미막밑출혈의 기전에 대해서는 사실 많은 논란이 있긴 하지만, 그냥 '대중적인' 의견에 따르자면, 얼굴이나 목의 가쪽의 충격에 의해 머리가 돌아가면서 척추동맥(아래 그림참조)이 잡아당겨져서 거미막밑공간으로 주행하는 척추동맥이나 그 위쪽의 바닥동맥등이 찢어지면서 생기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부검에서는 이런 찢어진 부분이 아예 보이지 않거나 찢어진 부분이 이런 기전과 전혀 관계없는 부분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전은 대개의 법의학자들에게 사실처럼 받아들여진다. 뭐 어쨌거나.......


         그림 3.7.5 척추동맥의 해부학[2] 

    이런 기전에 의해서 사망하는 것이 맞다면, 혹자들은 권투선수에서서 흔히 일어나는 사망원인일 것이라 추측할 수도 있다. 권투라는 게 주로 정면보다는 머리의 측면을 주로 공격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아주 유명한 권투경기에서의 사망예[3]를 제외하고는 외상성바닥거미막밑출혈이 권투에서의 사망에 기여한 바는 거의 없다. 이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실제 권투경기에서 '목이 돌아가게 맞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어퍼컷 한방 맞으면 목이 돌아가지 않겠냐고? 물론 일반인에서라면 갑작스러운 가격에 의해 저항없이 목이 돌아가서 혈관손상을 초래한 것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권투선수들에게 일상적인 '머리가 돌아갈만한 가격'에 의한 희생자는 거의 없다. 아마도 추정컨데, 권투선수라면 펀치를 예상하고 목근육이 단단하게 긴장되어 있을테니, 어이없게 목이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저런 형태의 가격을 받더라도 모든 사람에게서 같은 형태의 혈관손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더 자세히 들어가자면 조금 논란의 소지가 있는 부분이 튀어나올 수 있으니 여기까지만 얘기하기로 하자. 뭐 간단히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학교에서 선생들, 혹은 일진들에게 맞을 때, 누구나 경험해 봤을(물론 필자는 일진 출신이라서 맞아본 예는 없지만....... 뭐 아닌거 같다고? 나름대로 생각하길 바라며 -.-;;;) 것이겠지만, '안경벗고, 아구지 꽉 다물고, 가드 올려라'라는 '친절한 사전 경고'는 맞는 사람의 피해를 줄여주는 선한 의미가 아닌, 때리고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