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 LV 7x21 - Ending Happy


    '병리학이 모든 것을 말해주진 못하지.'


    이전 CSI: LV의 한 에피소드에서 로빈스 박사는 이런 식의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물론 그 '말해주다'라는 것이 여기서는 조금 다른 의미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법의병리의사(forensic pathologist)들은 흔히 죽은이의 얘기를 듣고 살아있는 이에게 말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얘기하곤 한다.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블로그의 제목인 Mortui Vivos Docueran이 그런 의미이다) 하지만, 병리학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더라도 죽은 이는 모든 것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건 대부분 그들이 말해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듣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게 맞을 것이다. 혹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어떤 면으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도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잘못 알리는 일도 있을 것이다. 

    이게 무슨 개 풀 뜯는 소리냐고 얘기한다면, 약간 더 현실적인 얘기를 해보자. 부검 혹은 검안을 통해 어떠한 소견(들)을 발견했을 때 그 발견만으로 사인을 포함한 모든 사항을 알 수 있고 그것(들) 자체로 명백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그것(들)을 해석해서 과연 그것(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고, 이를 다시 정리해서 최종적인 결과를 알아야 할 누군가(상황에 따라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될 수 있겠지만)에게 얘기하는 것도 역시 중요한 일이다. 

    이런 알리기의 방법 중에 하나가 부검소견서나 시체검안서에 기록하는 일이다. 일반적인 병리의사들이 조직검사보고서로 말을 하듯 법의병리의사는 부검소견서나 시체검안서로 말을 한다. (일반적인 의사는 진료기록이나 진료소견서만큼이나 환자를 대면해서 말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병리의사는 환자를 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죽은 자는 얘기를 들어줄 시간이 없는 듯하다.) 법정이나 언론의 중심에 나와서 거들먹거리면서 폼을 잡는 건 아주 부수적인 일들일 뿐이며, 실제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죽음에 대한 (비교적) 짧은 기록일 뿐이다. 

    부검소견서가 진료기록부처럼 어느 정도 긴 얘기를 담을 수 있는 형태라면 시체검안서(혹은 사망진단서, 우리나라에서 두 문서의 차이는 검안의사가 쓰느냐 진료의사가 쓰느냐의 차이일 뿐 거의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아주 짧게 그 죽음을 표현할 수 있는 몇줄 요약이라고 할 수 있겠고, 대개는 부검소견서의 결론만 적은 형태이기 쉽다. 그런데.......

    CSI: LV 7x21 - Ending Happy에서는 참 복잡한 사연을 지닌 권투선수의 주검이 나온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머리에 쇠지레에 의한 둔기손상을 입고, 목엔 석궁이 관통되고, 외음부엔 심한 아나필락시스 소견을 보이는 시신이 수영장에서 빠져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물론 이 외에도 이 시체가 복잡한 얘기의 일부분이 되는 건 '따뜻한 수영장물' 때문에 사망시간 추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또한 작가들이 던져놓은 훈제청어[red herring]가 아닌가 싶지만, 어쨌든)을 포함해서 여러가지가 더 있긴 했지만 말이다. 

    사건 자체를 각각의 이벤트로 나누어 보면 허술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포함되어 솔직히 높은 평가를 하기 힘든 억지스러운 에피소드였긴 하나, 그건 뭐 그렇다고 치자. (필자가 이렇게 그냥 넘어가는 건 이 에피소드에서 조차 이런 얘기를 하게 된다면 포스트 자체가 너무 길어질까 두려운 탓이다. 필자 아주 바쁜 사람이다....... 흠) 문제삼고 싶은 건 마지막에 나오는 이 부분이다.  
   

       사진 7.21.1 사인이 심정지(Cardiac arrest)라고?

    이는 로빈스 박사가 사인을 적은 것으로 대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병기된 숫자는 표 7.21.2에 있는 미연방표준사망진단서 중에서 의사가 쓰는 부분의 번호이다. 이 부분의 간략한 설명은 이전 포스트에 있지만 주석에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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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Part I 
        a  Unknown/ Cardiac arrest (불명/ 심정지)

        b  Fall off a chair (의자에서 떨어짐)

      Part II
      Contusion (좌상)
          BFT - Crowbar (둔기손상 - 쇠지레)
      Trachea Punctures (기관천공)
          Crossbow (석궁)
      Anaphylaxsis (?- Anaphylaxis의 오기로 생각됩니다만.......)
             Shellfish (갑각류)
             Urethra - P.O.E (요도 - 진입구 (port of entry))
             Genitals (외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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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 7.21.1 CSI: LV 7x21
의 사망진단서에서 기록된 사인

  
   그런데 뭐가 문제냐구?

    간단히 말하자면, 사망진단서 혹은 시체검안서에 들어가지 말아야 할 단어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첫번째로 '심정지(cardiac arrest)'라는 흔히 보는 단어가 문제다. 앞에 불명(unknown)이라는 것이 붙어있긴 하지만, 어떤 사람도 심장이 정지하지 않고 사망하는 경우는 없기때문에 가장 쓸데없는 언급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의미는 대략적으로 '심장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급성 사망'이라는 의미로 쓰었을 것이지만, 실제로는 이런 부분은 차라리 비워놓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실제로 이 사망진단서를 잘 읽어보면, 사인을 적는 란 바로 위에 심정지, 폐정지, 심실세동같은 거는 사인으로 적지말라고 친절하게 적혀있다) 두번째, '의자에서 떨어짐'이라는 부분도 사실 부적절하다. 32-b는 32-a의 원인이 되는 부분이다. 이런 언급대로 의자에서 떨어져서 물에 빠진 후, 급성심장사한 것이라면 이 사람의 사망원인은 익사가 되어 버린다. 만약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직접사인을 익사(drowning) 혹은 자신이 없다면 한발짝 물러나서 물에 빠져 죽음(immersion death)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익사를 다룬 포스트에서 다룬바 있지만, 흔히 물에 빠져 죽은 예가 모두 익사는 아니며, 그 외의 물속에서의 자연적인 원인에 의한 사망의 대부분은 심혈관질환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의자에서 떨어진 것은 그냥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 물에 빠지지 않았으면 죽지 않았을 거라고? 혹은 의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거라고? 그걸 누가 알겠는가. 사망진단서는 의사가 추리력을 발휘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실존하는 사실을 쓰는 것일 뿐이다. 

    Part II의 부분도 사실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앞에서 언급한 대로 너무 길고 진부한 설명은 이 포스트에서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혹시 나중에 포스팅할 거리가 없어서 너무 심심한 일이 생기면 다시 언급할지도 모르겠지만...... 뭐.....

 

        표 7.21.2 미연방 표준 사망진단서 (일부 발췌- 24. 사망 선언 일시    25. 사망 선언 시간 26. 사망 선언 의사의 서명 27. 면허번호 28. 서명 일자 29.  실제 혹은 추정사망 일시  30. 실제 혹은 추정사망 시간  31. 법의관/검시관의 확인여부 32. 사망원인 (cause of death) PART I - 실제 사망을 일으킨 원인을 사건의 연쇄(chain of event) 형태로 기술/ PART II - 사망원인에 포함되지 않으나 죽음에 연관된 중요한 사건을 기술 33. 부검 여부  34. 사망원인을 충족시키는 부검 소견이 있었는지 여부 35. 담배가 사망에 기여한 정도 36. 여성의 경우, 출산력  37.  사망의 종류 (manner of death) 38. 손상일자  39. 손상시간  40. 손상장소  41. 업무 도중의 손상여부 42. 손상 주소  43. 손상의 어떻게 일어났는지 기술  44. 교통사고의 경우, 종류 45. 진단서 교부 의사 (certifier)서명 46. 사망원인(32)을 작성한 사람의 이름, 주소, 우편번호 47. 진단서 교부의사 의 직책 48. 면허번호  49. 진단서 교부 일시  50. 파일 일시)

    사망진단서에 무엇을 써야 할 것인가는 사실 의사 좁게 봐서는 법의병리의사의 소관일 뿐,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가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것들은 진단서에서 빼야 된다는 것이 있다. 표 7.21.4에서 언급한 '최종단계', '비특이 해부학적 과정', '비특이 생리학적 혼란'이 그것들이다. 상당히 어려운 말로 들리겠지만, 그냥 풀어 쓰자면....... 죽을 때 생기는 일반적인 일들을 사망진단서에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 원칙은 표 7.21.3 에 언급된대로 그것이 일반적이지 않을 때만 기록하면 된다. 그런데, 이게 왠일....... 지금까지 사망진단서에서 흔히 봤던 것들이 줄줄이 기술되어 있네? (물론 대개의 독자들은 사망진단서를 볼일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필자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사망진단서에 잘못 기술되어 있는 경우는 흔하다. 그건 단지 일반의사들이 이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일 것이다. 생전가야 한 번이나 볼까 말까 한 질환들의 병인, 병리, 임상양상, 치료, 예후를 달달달 외우게 하면서도, 누구나 한번은 죽으며. 이런 죽음에 대한 관리를 모두 의사가 해야 하는데도, 이에 대한 공부는 거의 안하는 우리나라 의학교육의 문제일 수도 있다. 뭐 그건 그렇다고 치자.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추가해서 설명하자면,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각각의 현상들이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이 그 자체만으로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들이지만, 죽은 사람의 입장으로 생각하면 죽어가는 과정에 일어날 수 있거나 죽음 그 자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망진단서/시체검안서에서 요구하는 것은 실제적인 사인일 뿐, 그가 죽어가는 사이에 어떤 일들을 겪었으나가 아니다. 대개의 의사들은 그런 현상들을 실제보다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적는 경우가 흔하다. 물론 일부에서는 그 자체가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적어주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쇽(shock)이나 폐혈증(sepsis) 같은 경우 그로 인해 사망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그와 관계없는 확실한 사인이 있는 경우에도 나타날 수 있으며, 때로는 이를 언급해주는 것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이 원칙에 대해서는 표 7.21.3에 자세히 나와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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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칙 1.  최종단계(terminal event)는 사망진단서에 언급되지 않아야 한다.

     원칙 2.  비특이 해부학적 과정(nonspecific anatomic process) 또는 비특이 생리학적 혼란(nonspecific physiological derangement)은 다음의 조건을 충족할 때 사망원인에 기록한다.

              (a) 기반 사인의 알려진 치명적인 합병증일 때

              (b) 임상양상, 시간적 순서, 혹은 해부학적 혹은 검사실 소견에 비추어, 죽음에 이르는 상황단계의 일부로 생각될 때

              (c) 하나의 증상이나 징후가 아닐 때

              (d) 사인에 명백하게 언급되지 않으면 환자에게 그것이 있었는지 명확하지 않을 때

              (e) 그것을 포함하는 것이 사실을 과다하게 단순화시키지 않을 때

              (f) 가능한 한, 원인이 특정한 기반 사인이 함께 보고 되었을 때

    원칙 3.  환자의 비특이 과정 혹은 혼란(예를 들면 합병증)이 기반 사인이나 다른 보고된 조건 혹은 합병증을 생각해서 명백할 때는, 보고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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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 7.21.3
사망진단서에서 사망기전을 직접사인과 중간사인으로 쓰는 가이드라인 (From 핸즈릭 R: 사인을 적을 때 사망의 기전의 삽입/배제 원칙. Arch Pathol Lab Med 121:377-80,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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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단계 (teminal event) -   부전수축(asystole), 심정지(cardiac arrest), 심폐정지(cardiopulmonary arrest), 전기기계해리(electromechanical dissociation, EMD), 호흡정지(respiratory arrest), 심실세동(ventricular fibrillation).
     비특이 생리학적 혼란(nonspecific physiological derangement) - 산혈증 (acidosis), 균혈증 (bacteremia), 심장탐폰(cardiac tamponade), 응고장애(coagulopathy), 혼수(coma), 탈수(dehydration),  율동부전(dysrhythmia), 부종(edema), 뇌증(encephalopathy), 실혈(exsanguination), 고혈당증(hyperglycermia), 저혈압(hypotension), 다장기부전(multiorgan failure), 장기부전(organ failure), 기흉(pneumothorax), 문맥고혈압(portal hypertension), 경련(seizure), 폐혈증(sepsis), 혈청 전해질 장애(serum electrolyte disturbances), 쇽(shock), 체액소실(volume depletion)
     비특이 해부학적 과정(nonspecific anatomic processes) - 급성 장기경색 혹은 조직괴사 (acute organ infarction or tissue necrosis), 저산소성 뇌증(anoxic encephalopathy), 흡입(aspiration), 체강내출혈(body cavity hemorrhage), 경화(cirrhosis), 말기장기질환(end stage organ disease), 혈종(hematoma), 출혈(hemorrhage), 복막염(peritonitis), 폐렴(pneumonia), 폐색전(pulmonary embo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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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 7.21.4
기전사인이 아닌 최종단계, 비특이 생리학적 혼란, 비특이 해부학적 과정 (From 핸즈릭 R: 사인을 적을 때 사망의 기전의 삽입/배제 원칙. Arch Pathol Lab Med 121:377-80, 1997)

    하지만, 적어도 시체검안서나 부검감정서를 쓰는 일이 그저 어떤 검안/부검에서 나타나는 사실만 그냥 언급하는 일이 아니며, 같은 사건으로 충분히 다른 길의 판단을 내릴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만 알아두자. 적절한 '3줄 요약'은 법의병리의사에게도 중요한 일이라는 것도 말이다.  

by 산채비 | 2007/07/02 11:34 | Who Are You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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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사이오닉스톰H at 2007/07/05 14:40
CSI갤에 이런 블로그가 있다고 해서 와봤는데 정말 좋네요 +.+
저는 법의학에 관심만 '쓸 데 없이' 많아서 미드를 보기 시작했는데
보면서 늘 궁금했던 것들이 이 곳에 다 있군요!

늦게 왔더니 너무 볼 게 많아 궁리 중이긴 하지만
자주 오겠습니다.


덧붙임 : 베어스 팬이신가요? 3배는 더 반갑습니다 ^-^
Commented by 사이오닉스톰H at 2007/07/05 23:40
질문 한가지 더 : 위에 사인을 보니 예에 저혈압도 있는데 저혈압때문에 죽는 사람도 있나요?
Commented by 산채비 at 2007/07/06 00:55
1. 위에 적힌 것은 '사인(cause of death)'이 아니라 사인에 가능한한 적지 말아야 할 것들입니다.
2. 순수하게 극도의 저혈압만으로 사망에 이를 수는 있으나 대개는 이런 저혈압이 동반되는 기저 원인이 있고 이들이 사인이 되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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