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벤와의 죽음....... 살인-자살(homicide-suicide)
    필자는 173cm의 키에 대략 60kg대 후반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는 그저 그런 체격의 소유자(말하자면, 레슬링과는 거리가 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대에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위치한 고등학교를 다녔다는 "불행한 과거" 때문에, 체육시간에 반 아이들과 모래밭에서 WWF(이후에 WWE로 바뀐) 흉내를 내면서 그야말로 뻘짓을 즐겨 했었다. (어떻게 고등학생이나 되어서 저런 유치한 짓을 했냐고 묻는다면, 필자에겐 아직도 부끄러운 과거다. 아마도 필자가 뛰어난 법의학자가 못된다면 아마도 그때의 영향 때문이지 않을까라고 변명하고 싶다. ^^) 필자의 역할모델(?)은 그 이름도 찬란한 분홍팬티의 'HITMAN'이었다. 매일 열리는 격렬한 토너멘트에서 두 번인가 모래판에서 90도로 얼굴을 쳐박히고 나서야 체육시간의 WWF에서 발을 끊은 바 있다. 대략 변명하자면, 이건 레슬링 기술의 한계도 있었지만,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는 게임각본을 무시한 한 녀석의 무한 헤드락을 동반한 서머솔트킥이 작렬한 탓이라고 해두고 싶다. 어차피 각본대로 움직이지 않는 레슬링은 죽음의 레이스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라고나 할까. 하여간, 그 이후 레슬링은 거의 본적이 없고, 그다지 관심도 없는 분야였다. 사실 그 이전의 WWF멤버들의 이름도 다 지워져버렸다. 아니 지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뭐 하여간......

    얼마 전에 크리스 벤와(Chris Benoit)라는 레슬러가 아들과 아내를 살해하고 자살했던 사건이 있었다. 사실 벤와가 어떤 선수였는지는 잘 모르거니와 알았더라도 필자가 별로 좋아하는 스타일의 레슬러는 아니기 때문에 그다지 관심은 없었겠지만, 관계자들이 말하는 벤와는 뛰어난 테크니션으로 링 밖에서는 평소 온순한 성격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1] (뭐 이런 얘기는 늘 그렇지만, 세상의 어떤 사람도 '저 놈은 마누라와 자식새끼 죽이고 자살할 놈같아 보여'라는 평가를 받긴 어려울 것 같다. 그러니 그냥 패스해도 될 듯 하다.) 잘 알려진 사건이라서 사건의 자세한 상황에 대한 언급은 피하기로 하고....... 

    필자가 이 사건에서 관심을 가졌던 두 부분은 이 사건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실제로는 어쨌는지 알 수 없지만) 아나볼릭스테로이드(테스토스테론제재) 복용에 따른 흔히 얘기하는 "로이드 레지(roid rage)"가 그 원인이 되었는지의 여부와 함께 이 사건의 형태인 '살인-자살(homicide-suicide)'이라는 카테고리였다. 이 중에서 로이드 레지 얘기는 나중에 시간날 때(?) 언급하기로 하고 이 포스트에선 살인-자살에 대해서 얘기해 보기로 하자. 

    많은 언론에서 벤와의 죽음에 해서 상당히 동정적인 반응을 보였었고, 심지어는 어느 심리학책에서 베껴온 것 같은 말들을 나열하곤 했다. 필자는 범죄심리학에 대해서 그다지 아는 바가 없긴 하지만, 적어도 자살에 아무런 단서도 없는 상황에서 검증되지 않은 (맞으면 좋고 틀리면 상관없다는 식의) 얘기들을 마치 확정적인 사실인냥 얘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고.......

    일단, 살인-자살이라는 용어 자체가  낯설게 들릴 수 있겠지만, 이는 상당히 예전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정확히는 살인의 한 종류이다. 흔히 살해-자살(murder-suicide), 광범위 자살(extended suicide), 두 사람간의 죽음(dyadic death)이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2] 

    - 드문 사건으로 한 사람이상의 사람(들)을 죽이고 나서 24시간 내에 자살한 것을 말한다. (다른 논문[3]에서는 1주 이내로 정의하고 있기도 한다.)
    - 대개 가해자는 남자(92%)이며, 대개의 희생자는 가해자의 현재/ 혹은 전 파트너(58%)이다. 아이들이 포함되는 경우도 흔하다.
    - 예방을 위해서 가족내 폭력의 가해자/피해자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며 스트레스가 되는 상황에서 살인-자살의 위험이 증가하는 것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 

    사실 이런 예는 극히 드물어서 나라마다 그 발생 예가 다르긴 하지만, 매년 10만명당 발생율이 0.07~0.46명 정도이며, 이는 전체적인 살인사건의 발생율에 따라 달라지며, 시대별, 나라별로 이 차이는 두드러지게 차이가 난다.[4]  예를 들면, 1988-91년까지의 미국 애틀란타에서 살인사건의 연간 발생율은 10만명당 38.8명이었으며 이 중 1.4%만이 살인-자살 예였지만, 1950-64년까지 이스라엘(Western Jews)에서의 살인사건의 연간 발생율은 0.59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중 67.8%가 살인-자살 예였다. 흔히 살인사건의 발생율이 높으면 살인-자살의 발생율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있긴 하지만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덧붙여,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궁금할 수 있겠지만, 이에 대한 통계는 찾기 어려웠고 홍콩의 예[5]를 보면 다른 나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되어 있다.)

    살인-자살에 대한 잘못된 오해들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살인에 대한 후회로 속죄하는 의미에서 자살한다고 하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영국인이 살인-자살의 비율이 높은 이유가 영국인들이 자신이 저지른 일들에 대해 심하게 자책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기도 했는데, 전혀 근거없는 것으로 밝혀졌다.[6] 물론 죽은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자살했는지 구체적으로 물어본 적도 없고 이런 사람들이 모두 유서를 남기는 것도 아니어서 확실하게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살인사건 자체에 대해서도 비슷하겠지만, 통계적으로 이런 사건의 형태에서 성별을 제외한 어떤 것도 살인자의 특성을 특정하지 못한다. 물론 일부에서 우울증, 알코올 의존등의 정신질환을 가지거나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벌인 경우도 발견되지만, 대다수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이런 종류의 사망도 여러가지 형태를 보여서 고작 두 사람 이상의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외의 공통점이 없을 수 있다. 이를테면,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가장의 아내를 죽이고나서 자살한 경우라던가 피라미드 판매에 전 재산을 날린 엄마가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산으로 가서 모두 죽은 경우라던가,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총질을 하고 나서 죽은 경우들도 모두 이 범주에 해당되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히 특성이 없을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 벤와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이것이 약물의 부작용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가정사에 의한 것인지, 혹은 약물이 아닌 다른 이유의 급성 정신질환에 의한 것인지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가설들을 주절주절 얘기한다는 건 그저 쓸데없는 소설을 양산하는 일 밖에 되지 않겠지만, 적어도 한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전혀 그럴 사람이 아니었는데'라는 식의 평가는 언제나 동화책에서 나오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죽음의 가해자 쪽을 보면 어떤 문제도 없던 정상적인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누구도 '나와는 상관없는 죽음'이라는 얘기를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통계는 얘기해준다.

   비단 살인사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앞에 둔 사람들의 반응은 그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종류의 삶의 방식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다는 게 맞는 얘기일 것이다. 이에 대한 심오한 교훈을 주는 우리의 옛 성현들의 말씀이 있지 않은가?

    "죽으려면 무슨 짓을 못해!"
   

    참고문헌

    1. 위키페디아, 크리스 벤와 (http://en.wikipedia.org/wiki/Chris_Benoit)
    2. 보사트르 RM, 사이먼 TR, 바커 L. 2003-04년, 여러 주에서 일어난 살인-자살 예의 특징. Inj Prev 2006;12:33-8.
    3. 살레바 O, 푸코넨 H, 키비루수 O, 뢰키비스트 J. 살인-자살, 예방하거나 살인, 자살과 구분하기도 힘든 사건. Forensic Sci Int 2007;166:204-8.
    4. 밀로이 CM. 살인-자살의 역학(두 사람간의 죽음). Forensic Sci Int 1995;117-22.
    5. 챈 CY, 배 SL, 브로드허스트 RG. 1989-1998년, 홍콩에서 살해-자살. Forensic Sci Int 2003;137:165-71.
    6. 밀로이 CM. 살해-자살: 후회 혹은 복수? J Clin Forensic Med 1998;5:61-4.
by 산채비 | 2007/07/09 22:50 | Neverending Story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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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미키맨틀 at 2007/07/12 19:04
산채비님께서 WWF놀이(?)를 하셨다니 의의네요.^^ 요즘 애들이 암락놀이(?)를 하는 것과 비슷한 것인가^^
이 세상에서 안 불쌍한 사람은 극히 소수겠지만 특히 프로레슬러들은 더 동정이 갑니다. 화려한 표면에 가려진 약물중독, 엄청 살벌한 스케쥴!-_-;
Commented at 2007/07/13 03:0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9/04/27 18:5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이근복 at 2009/04/27 19:00
너무나 슬픕니다. 아들,아내를 살해한후, 크리스벤와가 자살을 했다네요 어쨋든 고인에 명복을 빌고요 크리스벤와!! 언제나당신은 진정한 영웅이고 영원한 월드헤비급챔피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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