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나 영화는 말한다. '진정한 영웅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실은 이렇다. '좀 더 많은 피가 필요하다.' 어린 시절에 '슈퍼히어로물'에 빠져서 슈퍼맨이니 배트맨이니 하는 것을 빠지지 않고 챙겨본 사람이라면, 나이가 들어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당시 우리가 아무런 비판없이 받아들였던 그런 영웅이 결국은 현실적인 법 테두리안에서 보면 잘 나가봐야 연쇄살인범 정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런 생각 해본 적 없다고? 뭐 그렇더라도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이제부터 좀 생각해보면 되니 말이다. 사실 슈퍼히어로물에서 악당은 반드시 죽어야 할 존재일 수 밖에 없고, 명색이 '슈퍼'히어로인데 상대할 악당이 달랑 한명만 나온다면 이는 멜로물이나 포르노가 아닌가 의심해야 할 영화가 되어버린다. 아니, 그런 종류의 영화에서조차 단 한명의 상대역만 나온다면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 어쨌든 많은 수의 죽어야 할 존재가 등장하고, 그들을 모두 박멸하는 것이 영웅의 역할인데도 불구하고, 실제로 일(?)을 저지르고 나면 '지구를 지키기 위해 그런 것이니 정당방위일 뿐'이라고 법정에서 아무리 항변해봐야 '끝끝내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죄자'로 낙인찍혀 교수대에 고압전류선으로 목매달린 후 총살을 당할지도 모르겠다(뭐 이정도는 되어야 슈퍼히어로물이 아닐까 싶다). 이런 식의 범죄는 전쟁상황이 아닌 상태에서도 당연히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전쟁 중에 그랬다고 할지라도, 이쯤 되면 전쟁이 끝난 후에 A급 전범으로 즉결처분을 당할 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현실에서 슈퍼히어로가 나오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법질서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슈퍼히어로물이 현실적인 배경을 담게되면 좀 내용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데, 절대 현존할 것 같지 않는 고담시의 시민 배트맨이 현실속의 스파이더맨보다 막나가는 게 그런 배경이 있을 듯 하다. 하지만, 대개의 슈퍼히어로물이 냉전시대를 반영한 '영웅: 악당 = 선: 악'의 구도로 독자들 (혹은 영화애호가들)의 호평을 받아왔다면, 현재는 그런 플롯 자체가 아닌 그냥 그 시대에 대한 향수(?)를 겨냥해서 가끔 리메이크 되는 것을 빼고는 이미 한물간 장르가 되어 버렸다. 요즘에도 간간히 나오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몇몇 아동용 영화나 시대를 잘못찾은 괴수물을 빼놓고 나면 어디에도 영웅은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고 말해주고 싶다. 사실 영웅이 사라진 건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만은 아니지만, 뭐 그런 얘기는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닌 거 같고...... 어쨌거나, 아동용 영화에서조차 이런 선과 악의 구분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가 흔해진 요즘의 영화들에서는 오히려 슈퍼히어로급(?) 인물을 악에 가깝게 표현하는 경우도 간혹 있을 정도다. 필자의 '슈퍼히어로 = 연쇄살인마'라는 일견 '그다지 적절치는 않아보일지도 모르는' 등식에 충실한 드라마가 하나 있다. 바로 이 블로그에서도 다룬 바 있는 덱스터(Dexter)다. 우리의 영웅은 자신의 살인본능을 악을 처단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이런 괘씸한 설정에 의외로 무덤덤하게 호응하게 되는 건, '이렇게 대놓고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많은 스릴러물에서 이미 슈퍼히어로물의 플롯을 기괴하게 빌려다 썼기 때문일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드라마를 보다 보면, 정말 덱스터는 전형적인 슈퍼히어로물을 현실에 잘 버무린 수작이 아닐 수 없다는 사실에 대개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단지 '슈퍼히어로물'의 변형이 아니고, 원래부터 스릴러라는 장르 자체가 선악의 구분 자체가 잘 흔들리는 장르이기 때문이라는 반박이 있을 수 있다. 특히 복수, 천벌, 원죄 같은 스릴러의 흔한 공통 주제에서는 주인공이 절대 선이 아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일반적인 스릴러물에서 연쇄살인마는 악의 편일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생각하면 (공포는 저지르는 쪽 보다 당하는 쪽에 더 강할 수 밖에 없다), 왜 이런 설정을 영화에서 차용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이 역시 여러가지 답이 있겠지만...... 필자는 그냥 '그것이 현실적이기 때문'이라고 얼버무리고 싶다. 사실 스릴러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상당부분에서 현실에 집착하게 되는 건, 장르의 특성과도 연관된다. 현실을 벗어난 공포나 두려움은 짧은 시간에는 상당할 수 있으나, 영화 자체가 길어지거나 비슷한 류의 영화들이 등장하게 되면 개별 영화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지면서 제작자가 원하는 방향의 공포나 두려움이 희석되게 된다. 깊은 산속에 실제로 존재하는지 여부도 알 수 없는 기괴한 고성에서 피를 빠는 흡혈귀가 있다고 말하는 건, 당신이 숙직을 하고 있는 회사 옆의 폐건물에서 연쇄살인마가 있다는 것과 비교해서 그 공포의 수준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영악한 영화광들은 이미 왜 폐건물에 연쇄살인마가 살고 있을까 같은 상당히 논리적인 질문들을 제작자에게 던지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현실에 저런 것이 있다면 스릴러를 볼 이유가 없을테니, '진정코 현실적인 스릴러'는 논픽션이나 제한된 다큐멘터리의 몫으로 넘기기로 하면, 이런 접근방법에 대한 스릴러제작자들의 대답은 두 가지이다. 첫번째가 '논리가 필요없는 혹은 논리가 흔들려도 크게 지장받지 않는 배경의 영화를 만든다'정도 일것이다. 스릴러에서 얼토당토 않은 중세가 등장한다던가 환타지 무비 스타일의 스릴러가 그 예가 될 것이고, 대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두번째가 '논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쉽게 속일 수 있는 거짓 현실'을 등장시킬 것이다. 일견 보기엔, 두 가지가 전혀 다른 것같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 역시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거 같다. 어쨌거나, 이런 실패작들 사이에 영화 '패솔로지(Pathology)'를 두고 싶다. 어떻게 보면 '공포를 위한 얼토당토 않은 환타지'가 될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상당히 그럴 듯해 보이는 거짓'일 수도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비교적 논리적으로 많은 피를 얻어냈다는 측면에서'만'은 성공한 셈이니까. 쓸데없이 서두가 길긴 했지만 하여간...... 어떤 의미로든 이 '패솔로지'는 그다지 잘 만든 영화는 아니라서, 이 카테고리(Cine Forensis)에서 법의학적인 부분을 비평할 수준의 영화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굳이 이 '재미없는 영화'를 시간을 내서 본 것은 최근에 나온 영화들 중에 몇 안되는 바로 '법의학자'가 주인공인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저 그것뿐이다. 제시카 알바가 나온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녀를 쏙 빼고 나면 남기남 감독 작품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이 영화도 그 부분을 빼면 필자에게 전혀 감흥을 주지 못하는 작품이다. 그래서 아주 길게 설명하기는 그렇고....... 그냥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얘기에 대해서만 짧게 FAQ를 달아보고자 한다. Q1. 주인공이 하버드 출신의 천재 부검의라던데,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A1. 사실 설정 자체는 병리과 전공의(1년차 추정)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환타지 소설의 꽃미남 마법사 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는 '하버드 출신의 천재'라는 말 자체가 '환타지 소설의 꽃미남'과 거의 비슷한 뜻으로 쓰인다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표현으로 '사시, 행시, 외시 모두 패스한' 이 있다. 어쨌거나 실제의 병리과 전공의 1년차는 미국이 아니라 과테말라나 소말리아에서도 저렇게 막나갈 수는 없고, 다른 의학 분야와는 조금 다르게, 법의학은 어떠한 형태의 의과대학을 나왔던지 상관없이 학부에서 배운 것만으로는 우수한 능력을 과시하긴 어려운 분야인데, 그건 법의학이 대단한 학문이라서가 아니라, 경험이 우선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물론 환타지 RPG 게임에서처럼 마법의 스크롤을 득템해서 '경험이 +100 되었습니다'가 되었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게다가 의료 환타지에서의 '하버드 출신의 천재'는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나온 해리포터' 수준이 아닌가. 당연히 학교에 들어오자마자 마법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좀 더 현실적으로 하기 위해 '전공의'가 아닌 '교수' 혹은 '팩컬티'가 살인마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전공의들은 대개 30대 초반이고, 실제로 일을 하는 병원스태프는 보통 40대 이상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스릴러 무비의 주 관객층과 괴리가 생길 수 밖에 없다.) ![]() 그런데, 그렇게 잘난 마법사가 왜 이런 예과 학생수준의 병리학 기초강의를 듣는담....... 참 웃기지도 않는 일이지만, 슈퍼맨도 처음엔 자신의 능력을 모두 발휘한 것도 아니고, 한비광도 처음엔 비룡도를 손에 쥐지도 못하고 경공술 외에 아무 능력도 없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뭐 환타지가 뭐 그런거 아니겠어? Q2. 실제로 법의학자들이 부검 결과를 쉽게 조작할 수 있어? A2. 일단 부검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조금 복잡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부검을 요하는 변사에 대해 대학병원의 병리과 전공의들이 작당을 해서 사인을 쉽게 조작할 여지는 거의 없다고 보는 쪽이 나을 것이다. 일단 어떤 시체에 대해서 부검 여부, 어디서 부검을 할 것인지, 누가 부검을 할 것인지 등에 대한 선택권은 그들이 아닌 법의관(M.E.)이나 검시관(coroner)에게 있고, 대개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는 시체'를 대학의 전공의들이 멋대로 난도질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럼 법의관이나 부검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일부 검시관(검시관은 의사가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이전 포스트 참조)은 부검결과를 조작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말하긴 어렵긴 하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 모여서 역적모의를 하지 않는다면 개별적으로 조작이나 은폐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일단 여기까지는 좀 진지한 대답일테고...... 환타지영화로 돌아오면 자기들이 멋대로 시체를 가지고 와서 놀 수 있는 비밀 공간? 왠지 여고괴담의 폐쇄된 미술실 같은 '창조된 공포공간'이라던가 '호그와트 마법학교 도서관에서의 밤'과 같은 느낌일 뿐이다. 부검은 피치못할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밤에 의사들만 모여서 몰래하거나' '모든 사람이 잘 알고 있는 부검실 외의 공간'에서 해야 할 일은 없다. 아니 있어서는 안된다. 기본적으로 법의학이라는 학문이 뭔지를 안다면 이런 대답은 사실 쓸데없는 답일 수 있지만, 뭐 이런 영화에서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뭐 고작 싸구려 환타지 영화인데....... Q3. 실제로 부검실에서 자유롭게 부검을 해? ![]() A3. 부검실에서 일정 정도 이상의 엄숙함을 요구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일반적인 사회통념에 기반한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나라에 따라 부검 전에 죽은 자를 위해 묵념을 하고 시작하는 정도의 극도의 진지함을 보이는 수준일 수도 있고, 부검하는 도중에 시체를 옆에 두고 피자를 먹는 수준일 수도 있다. 수술장에서 종교의식을 하듯 엄숙하게 수술하는 의사도 있고 데스메탈을 틀어놓고 미친 듯 몸을 흔들며 수술을 하는 의사도 있듯(실제로 이런 돌아이는 극히 드물겠지만), 부검에서도 개인차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다만, 사회적인 통념을 벗어나는 행동은 어떻게든 제재를 받게 될 뿐이다. 부검실이 시장통처럼 시끄러운 것도 현실과는 크게 다르다. 물론, 부검 내용에 대한 가벼운 농담을 나누거나 부검과 관계없는 개인적인 얘기를 하면서 부검을 하게 되는 것 정도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이 영화 정도의 '막나가는' 대화 수준은 731 부대의 부검실 혹은 아우슈비츠의 비누공장(실존하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에서나 있을 법하다. ![]() 물론 단순히 쓸데없는 말이 많은 것만 문제는 아니다. 부검에서는 적어도 시체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 정도는 지켜줘야 할 것이다. 어차피 이 영화는 그런 것을 생각할 수준의 것은 처음부터 아니었으나 뭐 쓸데없는 소리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Q4. 이 영화에서 나온 교묘한 살해방법이 실제로도 통할까? A4. 사실 이 영화가 철저하게 실패작인 이유 중에 하나가 이런 부분이 엉망인 점이다. 몇몇 영화사이트에서 볼 수 있었던 '그들만이 아는 살인방법'이라는 솔깃한 문구와는 달리, 영화전체를 통틀어 제대로 된 '교묘한 살해방법'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새로운 건 거의 없다. 필자가 '요즘 좀 바쁘지만 않았다면' 각각의 살해방법이 나왔던 영화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그게 왜 그다지 교묘하지 않은가에 대해 얘기하고 싶긴 하지만, 그럴 가치가 없을 거라는 건 이 블로그의 독자라면 아마 충분히 다 알고 있을테니 이쯤하기로 하자. 그냥 재미없는 환타지 무비 하나 봤다고 생각하고....... 그래도 히로인은 꽤 아름답지 않았는가라는 위안을 해본다는 뭐...... ![]()
|
카테고리
이전블로그
2010년 12월
2008년 11월 2008년 09월 2008년 08월 2008년 06월 2008년 05월 2008년 01월 2007년 12월 2007년 11월 2007년 09월 2007년 08월 2007년 07월 2007년 06월 2007년 03월 2006년 12월 2006년 10월 2006년 09월 2006년 08월 2006년 07월 2006년 05월 2006년 04월 2006년 03월 2006년 02월 2006년 01월 2005년 11월 2005년 10월 2005년 09월 2005년 08월 2005년 07월 최근 등록된 덧글
시트로앵 C64는 C6G로 ..
by NSC at 11/30 너무나 슬픕니다. 아.. by 이근복 at 04/27 계속 해서 이 포스트에 G.. by 산채비 at 04/11 오랜만에 새 글이 올라와.. by 정worry at 04/08 정말 오랜만의 포스팅이.. by 로크네스 at 03/21 파리베/ '어떻게 되신건.. by 산채비 at 03/15 야후/ '법의병리의사(f.. by 산채비 at 03/15 꼭 의학과나 법의학과를.. by 야후 at 03/11 번역본 3권 사서 열심히 .. by NYPDESU at 03/04 돌쇠네/ 정확한 명칭은 .. by 산채비 at 02/26 메모장
최근 등록된 트랙백
이글루 파인더
라이프로그
|